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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에 효도관광 실려가 배 터져 죽을 뻔한 사연

by 라이터스하이 2022. 7. 12.


난생처음 공항 노숙 후 밝은 아침.
아시아나는 페이크, 저가항공을 타고 효도관광(?)을 간다. 퇴사 후 열심히 육체노동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여행 가고 싶단다. 챙겨줄 몸이나 마음의 여력도 없어 거절하려고 했는데, 여행 중독자들에겐 그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챙겨준 걸 돌려준다는 듯 같이 가고 싶다고 몸만 오라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그동안 모은 마일리지로 나쁘지 않은 캐리어 하나 선물해주며 버스에 올라탄다.


동생은 맛집에 환장하는 미식계 유망주(?)다. 특히 카레를 좋아하는데, 이번 여행지인 기타큐슈의 모지코 카레를 엄청 기대하고 있다.
그럴 거면 인도를 가..


치킨 감튀 아님

텐진 호르몬

내리자마자 스퍼트를 올린다. 국내에선 못 먹었던 메뉴를 먹는 게좋겠다 싶어 호르몬 식당에 왔다. 막창이나 곱창 같은 특수부위 요리를 하는 전문점이다. 일본식 곱창이나 스테이크를 전문으로 한다.
텐진 호르몬(天神ホルモン)이라고 기타큐슈 지역에선 꽤 유명한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여자분들에게 인기 있는 후쿠오카의 모츠나베도 있지만, 나는 제대로 호르몬스러운 비주얼이 먹고 싶었다.
보이는 앞에서 철판으로 요리해 주니 비주얼이 심플해도 납득이 간다.
간사이(關西) 지방에서는 버리는 것을 호루모노(ほるもの)라고 한다. 일본에서 먹지 않았던 내장류를 호루몬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내장을 재일 한인들이 가져다가 요리를 한 것에서 호르몬 구이가 나왔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원조는 한국인(?)
맛있는 메뉴도 있고, 조금 질긴 메뉴도 있었다.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먹어보는 것도 괜찮다. 술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대창이나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맥주 한잔 하시면 좋을 것 같다.


하프타임.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가서 녹차류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사실 이때부터 버거웠는데, 동생은 전초전이라는 듯한 눈빛이다.
이럴 거면 뷔페를 가..


"여기가 기타큐슈 최고 맛집 스케상 우동 맞습니까?"라는 생각만 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테이블 구조가 꽤 독특한데, 마치 휴게소처럼 되어 있다. 메뉴도 다양하고 손님들도 다양하다.


막걸리 아님

스케상 우동

단언컨대 평생 먹은 우동 중 최고였다.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도 그릇을 다 비워버렸다.
우동이라면 역시 면의 식감을 취우선으로 생각하는데, 스케상 우동이라면 식감이 미쳤다는 표현을 써도 된다. 면의 탄력이 제대로 밀당한다. 감칠맛의 풍미가 좋고, 씹는 맛이 끝까지 이어진다. 다시 먹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
만약 중학교 때 교내 식당에서 팔던 종이 우동(?)과 이 집의 면이 칼싸움을 한다면, 그 우동은 가루가 돼버릴 거다.
면에 죽고 사는 사람이라면 가 볼 가치가 있는 곳. 1976년부터 장사한 짬바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제 힘들어서 소화 좀 시키고 싶은


데..


이미 늦었다. 야끼소바가 이렇게 빨리 나오는 음식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이번 타임에 나는 서포터 역할만 하기로 했다.


그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쿠시카츠, 가라아게

쿠시카츠(쿠시아게라고 하기도)는 반죽을 입힌 고기와 야채류를 말한다. 일본 전국에 다 있겠지만, 역시 오사카의 신세카이가 가장 유명하다. 한국에도 일본 브랜드가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강남에서 다루마(?)라는 곳에 가 본 적 있는데, 메뉴뿐만 아니라 가격도 현지화돼버려서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쿠시는 사용하는 대나무 꼬치를 부르는 말이고, 카츠는 고기 커틀릿을 뜻한다고 한다.


'형님, 이제 시작입니다.'라며 쿠시카츠와 가라아게를 또 해치운다.
적은 양으로 다양한 메뉴를 먹고 싶다면, 이자카야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이자카야는 에도시대에 술을 만드는 곳에서 시음 형태로 간단한 술을 맛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본어를 줄여 이자케를 행하는 곳이라고 해도 이자카야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레스토랑과는 다른 분위기로 츄하이, 맥주, 그리고 니혼슈 위주의 술을 판매한다.

모지코 야끼 카레

드디어 독특한 모지코만의 카레가 나왔다. 치즈와 달걀, 그리고 매콤한 카레가 조합되어 나온다. 카레 마니아에게 물어보니 굉장히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카레도, 치즈도 둘 다 안 좋아하지만 '레트로'란 이름에 잘 맞는 개성 있는 메뉴라 괜찮았다. 야끼 카레 맵도 있으니 취향에 따라가면 된다.

벌꿀 아이스크림

벌꿀 아이스크림이었던 것 같은데, 벌꿀인지 푸우 꿀인지 위장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잊어버렸다.


무박으로 기타큐슈, 1박은 후쿠오카에서 하는 빠듯한 일정이다. 저녁으로 꽤 고급 식당에 왔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텐동을 먹으러 왔는데, 가격은 비싸고 맛은 평균이었다. 미안하지만 텐동에 진심인 편이라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거의 2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어려운 메뉴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가격이라면 감동은 줄 수 있어야 된다고 느꼈다. 홍대돈부리나 미스터돈부리같은 서울 긱당들과 비교해도 큰 레벨 차이를 못 느꼈다.
일본 텐동은 우리와 달리 참기름을 꽤 많이 섞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더 고소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


최근 다시 이 동생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먹다 죽는 한국판 쿠이다오레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은데, 제주도 물가가 환영해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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