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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직원 능력에 대한 편견

by 라이터스하이 2022. 7. 5.

 

최근 국내 대기업에서 일을 받아 협업을 하게 됐다. 정확히는 수주받은 것이다. 누구나 아는 기업에서 영상편집을 의뢰받았다. 물론 1회성이지만 2년 6개월 만에 '드디어 이런 곳에서도 오는구나'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내심 '그들은 스마트하겠지', '리드해주면 짖지 않고 잘 따라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결국 짖고 말았다.

보통 내게 영상편집을 의뢰하는 부류는 2가지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화려한 부분만을 보고 연락는 경우, 그러니까 겉 부분을 중점으로 보고 연락 오는 경우다.

두 번째는 아주 소수지만 연출 능력(영상의 플로우, 완급조절) 등을 보고 연락 오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 말 그대로 편집 실력을 보고 연락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고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자의 경우다. 화려함만 보고 연락 오는 경우는 보통 오래가지 못한다. 이번 대기업 또한 그런 부류였다. 

편집자와 클라이언트가 싸우는 이유는 보통 과부하 때문이다. 그러니까 편집자는 말 그대로 편집자인데 연출적인 부분까지 같이 떠맡기면 편집자가 슬슬 뒷골을 잡는다. 물론 편집자라고 해서 연출 능력이 없으면 안 되지만, 내 기준엔 그것도 최대 3:7이다.
클라이언트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샘플이나 레퍼런스를 보여주면, 편집자는 그림을 채워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을 지을 때 설계자의 역할을 클라이언트가 70% 정도는 하고, 나머지 인테리어와 마감을 편집자가 하는 것이다. 그중에 30% 남은 연출적 부분을 편집자가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편집자가 기획자, 연출자, 편집자의 역할까지 다 하는 줄 아는 사람이 있다. 물론 가능하다. 돈만 많이주면 뭔들 못하겠는가? 아무리 시대가 멀티태스킹을 요구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원한 다지만, 이런 중노동 직종에서 그런 일은 노예계약과 다름없다.

 

 

이 직원의 문제는 다른 클라이언트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그림이 없다는 것이다. 원하는 게 있긴 한데, 그것과 달랐으면 좋겠고, 그게 정확하게 뭔지 모르는 것이다. 이해한다. 나도 디자인을 맡긴다면 막연할 것이다. 하지만 방향성은 어땠든 의뢰하는 쪽에서 잡아야 한다. 모르겠으면 아무거나 잡고 똑같이 해달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니 편집자가 약통에 손을 가져가는 것이다.
어차피 시작한 거라면 마음에 들게 해야한다, 이게 내 유일한 직업적 철학이다. 그래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최대한 틀을 잡아 보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주말에 아무 답장도 오지 않았다. 내가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다. 주말은 그들도 쉬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의아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한 번의 주말 정도는 희생해도 되지 않을까? 실제로 마감일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불안했다. 하지만 그는 별로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분위기와 톤만 말해주면 알아서 틀을 짜고 마무리까지 해주길 바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디자인은 공산품이 아니기에 클라이언트의 머리와 내 머리가 부딪혀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기성복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대기업에서 연락이 왔을 때 내가 기대한 건 포트폴리오에 브랜드명 한 줄 올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스마트한 일 처리 방식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이번에는 이름만 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IT나 엔터테인먼트 직종이 아니니 이해는 한다. 경적이 적원 사원이니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이해 못하는 부분은 일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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