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찬사도 아니고, 참을 수 있을 만큼의 혹평도 아닌, '뜨뜻미지근했다'는 반응들이 그 아래를 덮고 있다. 왜 그럴까? 한석규, 하정우, 류승범, 전지현이라는 4명의 네임벨류. 그 높아진 기대치에 대한 실망일까? 아니면 부당거래의 파급력이 기대치의 장벽을 세워버린 탓일까? 이 2가지 이유 중에서 한 가지도 교집합이 없다면 베를린을 두고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최근 '차일드44'와 표절의혹까지 제기된 '베를린'>
역습을 버린 악습의 부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베를린은 욕심이란 두 글자가 꽤나 헤집어버린 영화라 말하고 싶다. 류승완 감독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을지 모를 압박감일 수도 있다. 4명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불러놓고 편집과 CG가 주목받는 액션 한 편을 만들려니 사랑과 감동이 빈약해지고, 짠한 러브스토리로 울음바다에 빠트리자니 또 류승완 스러워지기엔 힘들다. 직설적인 메세지로 역습을 하며 한 마리 토끼의 머리를 제대로 움켜잡았던 게 류승완 감독의 전작이었다면, 베를린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꼬리만 잡고만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결과는 어떨까? 전작에서 발산하던 류승완 감독의 개성은 분해되고 여러 액션영화의 장면들이 회상되는 슬픈 오마주다. 심형래와 CJ가 거하게 해드셨던 '디 워'의 데자뷰라고 하면 과언일수도 있겠지만, 과도기라기엔 너무 큰 판을 벌여놓았던 반성은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다. 기대보다 실망이 큰, 그래서 한국영화의 진화란 수식어에 포커스를 맞춘 평론가들의 코멘트였을까?라는 의심을 사게 한 점에 대해서.
과도기를 넘지 못한 충무로키드의 쇼미더머니
누구에게나 과도기는 있다. 라이터를 켜라로 꽤나 색깔이 강했던 박정우 감독의 연가시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베를린과 연가시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 시간에도 '500만을 돌파한 시기가 광해보다 4일 빠르다'며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 CJ가 공존하고 있다는 부분. 두 감독 모두 CJ와 함께 변신을 시도한 영화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도 아쉬움의 교집합이다. 몇 백만, 몇 천만으로 영화의 작품성이 판가름나는 대한민국 영화계의 슬픈 스코어 보드다.
베를린을 보고 난 후 류승완 감독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딱 하나있다. "이 영화가 정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인가?"라는 거다. 'of course'라고 쉽게 대답하기엔 영화 속 난코스가 너무 많았다. 캐릭터에 대한 몰입 시간도 부족했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플롯들의 정리도 어려웠다. 멋있다란 수식어는 얼마든지 붙여도 어색하지 않겠지만, 배려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예쁜 구석을 찾아보긴 힘들다.
늦은 밤, 베를린을 보고 나오는데 지난 해 피에타의 제작보고회에서 김기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시다시피 피에타는 제작비 1억에 촬영일수 10일로 만들어진 영화다) 베니스에서 상을 받은 그가 한 말은 "돈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사회가 됐으면 한다"였다. 그런 철학은 그의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영화로 이야기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이 우선이다. 예상 가능한 전개도 좋고, 플롯들의 난장댄스도 좋다. 하지만 그 목표가 쇼미더머니가 아니라면 이제는 과도기를 벗어난 충무로 키드의 아이덴티티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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