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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는 왜 '추녀'를 선택했나?

by 라이터스하이 2014. 3. 12.


소설보단 에세이, 에세이보단 웹컨텐츠에 익숙한 나. 자기 개발서와 소설의 위대함(?)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32살,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서야 글에 대한 무게감을 받아들였고, 서점 구석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소설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두꺼운 어떤 것이었다. 또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길디긴 메세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재미를 붙이기도 전에 따라다녔던 후크송같은 선입견들, 책을 멀리하게 만들었다는 나름의 핑계였다. 하지만 곧 아웃풋의 고갈이 인풋의 절실함을 불렀다. 블로그를 하면서 뭐라도 읽어야 뭐라도 나온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이젠 짜내기에 지친 것이다. 포스팅이 400개 넘어가지만 질적 향상보다 중요한 건 없다, 결국 책을 들었다.




찾아간 서점에서는 자기개발부터 인문학의 카테고리가 인기였다. 작금의 상황에서 어떤 책이든 도움된다는 건 확실했지만,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은 필자의 눈을 자극한 건 베스트셀러라 적힌 소설의 평대였다. 홀로 구석에서 펜대를 굴렸을 그들의 이야기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유명한 소설가가 누군지 당최 알 수가 있어야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고르기 전까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고른 소설책 한 권으로 주말 오후는 시작됐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저녁을 먹을 때까지 나를 붙들어놨고, 그 날 저녁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해줬다.


짧게 말하면 연애소설이고, 조금 길게 말하면 80년대를 겪은 20대의 현실, 사랑, 미래가 태풍처럼 흘러간 이야기라 할 수 있었다. 길지만 메세지는 분명한 이 책, 그 속에서도 필자의 궁금증과 의혹을 자극한 건 여주인공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었다. 연애소설에서 여주인공이 예쁘지 않다는 설정, 모르긴 몰라도 출판사에서 좋아할 리가 만무하다. 그들 입장에선 어떻게 마무리되든 살갑지 않은 설득일 거다. 비주얼 쇼크가 난무하고 걸그룹들의 노출전쟁이 2차대전을 연상시키는 지금, 작가의 입장에선 새로운 시각의 설전이 아닐 수가 없다.




박민규의 고집이 돋보인 추녀설정

대한민국 어떤 컨텐츠에서도 추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인물설정의 무한도전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못생긴 여주인공이다. 박민규의 고집이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혹자들은 이를 두고 판타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실로 웃을 수만은 없지 싶다. 박민규는 2%의 부족함을 어디서 채웠을까 하는 게 나름의 숙제였을 것이다. 그런 방학숙제라면 박민규는 고민하지 않았다. 벼락치기와는 아주 먼 탄탄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메세지로 그 부족함을 채우고 있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런 책이었다.




못생겨야 더 아프다?

잘생긴 남자와 추녀의 사랑이 시작되었지만, 추녀는 사랑을 확인하기 전까지 장난으로 생각하면서 그를 믿지 못한다. 그리고 두사람이 맺어진 후에도 이어지는 따가운 시선, 현실이 정한 사랑의 평범함을 거부한 그들의 쉽지 않은 사랑, 곧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그리고 그 뒤로 숨을 수 밖에 없었던 추녀. 비공싱적이고 애통한 이별을 선사한 그녀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 공허하고 텁텁한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의 갈증은 서로를 원함이 분명하지만, 20살의 풋사랑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못생긴 얼굴로 세상에서 소외되고 비주류로 분류되버린 그녀의 속마음은 현실세계와의 공감대를 불러낸다. 둘의 사랑이 과거형이던 진행형이던, 현실과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안타까움, 그녀를 바라보는 독자의 가슴이 슬플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메세지와 공감대로 커버된 여주인공의 못생김

시종일관 공허한 가슴으로 살아가고 있는, 죽은 왕녀의 파반느 주인공에겐 작은 테이블의 맥주 한잔이 삶의 낛이고, 추녀와의 산책이 행복의 시작이다. 그녀와 알 수 없는 헤어짐을 겪은 주인공에겐 치유의 시간이 주어진다. 추녀를 그리워하는 동안 그에게 추녀와 정반대의 미녀가 다가온다. 미녀의 가치관은 추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고, 자본주의의 정의를 표현하기 위해 나타난 듯, '초현실적인 미녀의 마인드'는 주인공에게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한다.


돈 존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퀸카를 찾아 매일 떠나는 존은 결국 그의 욕심을 채워줄 바바라를 만나게 된다. 곧 그것이 모든 사랑의 끝이 아닌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나이많은 이혼녀 에스더를 만나 진정한 감정교류를 완성하게 된다. 죽은 왕녀의 파반느, 그리고 돈 존이라는 영화의 공통점은 2가지가 있다. 여주인공이 예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아름다움보다 큰 가치는 얼마든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것에 열광하는 지금의 세대에 한번 쯤 던져볼 만한 공통적인 메세지들이다.




죽은 왕녀의 파반느는 캐릭터 설정이 완벽한 소설은 아니다. 물론 내가 제대로 읽었다면 하는 가정이지만. 오히려 그 속에 메세지가 빛나고 있음에 감사했던 책이다.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2달 가까이 된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은 공허함과 사랑에 대한 방향성을 동시에 전해주었던 그런 책이다. 지난 사랑 후 타고남은 재와같은 추억, 이 놈들이 기억의 방으로 옮겨간다면 다시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사랑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혹자라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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