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2015 · Fukuoka

#마지막날. 하타카역에서 푼 삿포로여행의 한 (feat. Letao 치즈케익)

by 라이터스하이 2015. 3. 8.




일어난 건 8시쯤, 밖을 나온 건 9시쯤 넘어서였지만, 감기가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내 인생 최악의 여행일 수 있었지만, 그리 실망하지는 않았다. 두 번째 여행인데도 이제 일본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그 이유일지 모르겠다. 조용하고 여백의 미를 가진 이곳의 분위기가 그저 좋을 따름이다. 모모치해변이나 야후돔을 돌아볼까 싶었지만, 무리해서 다니기보다 한군데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하카타였다. 



병신처럼 백팩을 메고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는 짓,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코인라커부터 찾았다. 카메라와 백팩을 넣고 닫아버렸다. 후련하고 개운하다. 어깨가 나가사키에서 봤던 용처럼 날아다닐 지경이다. 다음에는 백패도 없이 캐리어도 없이 빈손으로 가보고 싶다. 홍콩여행은 한 번 그렇게 해봐야겠다.

하카타역 지하 1층, 푸드코트로 향했다. 텐동이 있나 없나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결국 하나 찾고 말았다. 반가웠다. 이제 다른 메뉴는 몰라도 텐동은 메뉴판도 보지 않고 찾을 수 있는 정도는 된다. 그런데 이 집 텐동은 조금 달랐다. 음식이 나오고 씹고 나서야 그 비교를 할 수 있었다.

그 전에 먹어왔던 텐동이 정장이었다면 이번 텐동은 캐주얼이다. 다양한 튀김과 조금 달달한 맛이다. 그리고 바삭함이 적어 집에서 처음 텐동을 해본 엄마가 만든 그런 느낌이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새롭고 편안했다. 엄지 손가락은 못 들어주겠지만, 나름 좋았다. 바삭한 텐동을 좋아한다면 여기는 별로다. 

JR 하카타 시티의 맨 위층 바로 아래층. 뜻하지 않게 르타오를 만났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르타오는 삿포로 여행의 버킷리스트에 세손가락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간판을 가르키며 일하는 분에게

"르타오.. 홋카이도?"

맞다고 한다. 쾌재를 부르며 케이크 코너에 갔다. 그리고 케이크 하나와 아이스크림 하나를 주문했다. 케익은 한국에 갖고 들어왔고, 아이스크림은 그 옆에 마련되있는 자리에 앉아서 먹었다. 나같은 은둔형 외톨이에게 이 나라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혼자 밥먹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가 어느정도는 자리잡은 것 같지만, 아직 시선받는다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다. 

르타오에서 일본여행 최대의 트러블이 있었는데, 별것 아닐수도 있지만, 이 일로 거의 15분을 허비했다. 분명 케익과 아이스크림이 믹스된 메뉴 하나와, 치즈케익을 주문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주머니는 아이스크림 두번 먹으라며 대형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주시는 것이었다. 

'응? 내 치즈케이크는요?' 

"No no. one ice cream and one chese cake"

당황해 하시더니 뭔가 달란다. 

'아 영수증?' 

한참 보더니, 뭔가 말하신다.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계산기를 보여주며 영수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시로 뭐라고 한다.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언어의 장벽이 드디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수시로 자꾸 계속 못 알아먹는 나를 처리하겠다고 데리고 온 것이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도 100% 순도 높은 일본말로 내 귀를 간지럽혔다. 망했다. 온전한 멘탈이 되기까지, 알바를 포함해서 세 사람이 나에게 일본말로 말을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취소하고 다시 영수증을 뽑아야 되는데, 내가 다른 영수증을 준 것이다. 그 전에 샀던 다른 삿포로 케익점의 영수증을 준 것이다. 글로벌 쪽을 그렇게 팔고 나서 영수증을 받고 나서야 표정이 밝아진 사람들. 다행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계산할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더 쪽팔렸을 것 같다. 삿포로의 향기를 작게나마 맛볼 수 있다는 감사함에, 다른 영수증을 냈다는 미안함에 아리가또를 3인분 드리고 나서 르타오를 지나쳤다. 그리고 그 사이에 녹아버린 아이스크림까지 바꿔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이 고마운 아이스크림을 녹기전에 얼른 먹고 싶었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고싱 있냐고 물었고, 생각보다 좋은 뷰에 앉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JR선로가 나체로 보이는 하카타 JR 타워의 창가 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작은 행복을 누렸다. 한 입, 한입. 비행기를 놓쳐 못간 삿포로의 한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스르륵 스르륵 추릅 추릅. 

이 번 나가사키를 거친 후쿠오카 여행에서 나와 대화를 한 일본인은 30-40명 정도다. 그 중에 한명인 내 옆자리의 20대 초반 여자분에게 시간을 물어봤다. 짐을 모두 넣으며 핸드폰도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Do you have a time?"

손목을 가리키며 물어봤다. 역시 일본어로 돌아왔고, 나는 손가락으로 12시를 가리키며 맞냐고 하니까 맞단다. 넘겨짚었는데 맞다고 하니 기분좋다. 더 말을 걸고 싶었지만 일본어회화책은 코인라커와 잠들고 있었다. 아무튼 맛있는 음식과 좋은 뷰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하타카 역에 들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여기에서 커피나 에피타이저와 함께 작은 여유를 느끼고 가기를 추천한다. 회화책은 항상 옆구리에 끼고 말이다.

배도 든든해 졌겠다, 다시 쇼핑몰을 둘러본다. 미리 주문받았던 선물들을 살려고 이 곳에 온 것인데, 살 것이 많지 않았다. 이곳은 쇼핑센터지만 백화점에 가깝다. 덴진이 오사카의 도톤보리에 가깝다면 이곳은 오사카의 우메다라고 봐야할까? 연령대가 높은 고객층을 공략한다는 의도가 보이는 곳이었다. 명품 시계나 중고가 이상의 매장들이 많이 들어서있다. 캐리어를 하나 살까 싶어서 간 매장에 3만엔 이하의 제품은 내가본 기억으로는 없다. 남성복 매장을 한바퀴 더 돌고 카페라떼는 없고 카페오레만 파는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명품 쇼핑을 온 것이 아니기에 슬슬 지겨워진 나는 조금 빨리 공항으로 향했다. 2시간이나 빠르게 도착한 공항에서 뜻하지 않게 좋은 플레이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라운지같은 곳이었다. 멀리 떠나는 지인들의 비행기를 볼 수 있는 유용한 곳이다. 여기에서 세계 각지로 향하는 국내외 항공사의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비행기마다 이륙하는 소리나 포물선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덩치가 큰 비행기는 활주로 마지막쯤에 이륙하고, 조금 작은 비행기는 상대적으로 빨리 공중으로 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되돌아가는 날, 비행기들을 쳐다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지인들을 보내는 그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여기에서 뒷모습을 지켜보는 심정도 조금 느껴볼 수 있었다. 




김해에서 내려 부산역으로 향한 다음에 KTX을 타고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다녀온지 일주일이 되었고, 감기는 이제 5% 정도가 내 몸에 살아남아있다. 힘든 여정이었고, 평소보다 많은 곳을 돌아다녀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처음 해외여행을 했을 때 뭔가 발견해야된다는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소통하고 와야겠다는 여유를 조금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또 떠날 준비를 하고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어느 때보다 손떨림이 심한 사진이라 죄송스런 마음이다. 다음 포스팅은 부록으로 후쿠오카 공항의 모습과, 하루지만 강한 인상을 풍겼던 후쿠오카 힐튼 씨 호크 호텔 리뷰를 올려볼 예정이다. 해외여행을 혼자가는 것은 처음인데 살아돌아온 것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음은 홍콩&마카오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