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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가 넘치는 그곳, 김천 포도 농가를 다녀오다!

by 라이터스하이 2011. 8. 19.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겉 모습만 보면 끝없이 화창한 날씨에 덥지만 햇볓을 몇 컷 담으려 공원에 나갔습니다. 몇장 찍지도 않았는데, "삐리리리~"(슈퍼 마리오 핸드폰 벨소리, 달리 표현이 안됨)형이더군요. 어디냐고 묻길래 집이라 대답하니 빨리 나오라는 겁니다. 엥? 왜냐고 물으니 오늘 고모댁에 가기로 안했냐고 버럭!하는 겁니다. '아,이런..'

죽을 때도 아직 멀었는데 그걸 까먹고 산책하고 있었던 겁니다. 옷 갈아입고 뭐고간에 5분이면 도착한다는데 카메라만 접고 형 차에 올라타야 했습니다. 다녀오면 병원부터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말이죠. 형과는 최근 한냉전선이 없어서 장난친거라는 연기로 다행히 넘어갔습니다 -_-;

그렇게 형수와 형, 저와 어머니 네 식구는 한시간을 조금 더 달려 경북 김천에서 포도밭을 하시는 고모댁에 도착했습니다. 몇 년만에 온 건지 모를 정도로 오랫만에 왔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시골은 시골이더군요. 자연은 아직 변하지 않아서 추억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곧 다가올 날벼락은 생각치도 못한 채 추억에 빠져있었더랬죠.

품앗이를 나가신 고모 식구를 기다리는 동안 하우스 옆의 감나무와 하우스가 보이길래 찍었습니다. 이곳은 김천 봉계리라는 곳으로 고모댁은 한가지만 하는 게 아니라 포도, 토마토, 고추, 깻잎 등을 고모, 고모부와 동생분, 세 분이서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기다리는 동안 하우스에 들어가 포도 구경을 하는동안 찍은 사진입니다. 하우스에는 아직 설익은 포도들이 많더라구요. 포도는 크게 다들 아시는 거봉과 캠벨이라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여기 하우스를 제외하고도 다른 포도밭이 있는데 추석즘 해서 수확 예정중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웃분들은 지금 한창 수확중이라고 하시더군요. 세 분이서 이 큰 포도 하우스를 언제 다 따실까 생각하니 음식이나 과일이나 허투루 다뤄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또 한번 가졌네요.

요놈은 사탕같지 않나요? 알갱이도 다 다르고 색깔도 다 다르고 다문화 가정을 연상케 하더라구요. 같은 시기에 심은 포도인데도, 각기 다른 크기랑 색깔은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냥 바라보기에는 한없이 신기했습니다. ^^

고모가 깜깜 무소식이자 어머니는 반대편에 있는 깻잎을 따기 시작하십니다. 어머니는 쑥이던 나물이던 딸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치 않으십니다. 결국 집에 갈 때 어머니가 따신 깻잎으로 깻잎절임 한대야를 만들어서 세 집이 나눴습니다.

기다리던 고모가 오셨는데, 갑자기 차에 타라며 빨리 가자고 하십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타고 가보니 품앗이를 하는 분들과 식사를 하러 가신다고 하십니다. 김천 오는길에 차에서 김밥 두줄과 간식으로 게이지는 식도까지 차있었는데 식사를 하러 가신다니 당혹스러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데 계산을 포도 수확을 하시는 분들이 하셨더라구요. 배 터지기 직전까지 먹었는데 고모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니 조금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포도 수확 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러 갔습니다. 이렇게 주말의 노동은 시작되고.

차를 타고 10분 정도를 가니 포도밭이 줄을 서있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아주머니들은 앉아서 포도를 담고, 아저씨분들은 포도를 따거나 박스를 잡고 계셨습니다. 낄 자리는 없지만 밥도 얻어 먹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고모부를 도와 박스를 나르고 쌓기 시작했습니다. 고모부는 여기 뿐만이 아니라 바로 위에 있는 포도밭의 포도까지 실어주기로 하셨다길래, 두개의 밮 모두를 싣기 시작했습니다. 땀은 엄청스럽게 났지만, 하고 나니 기분은 무지 좋았습니다. ^^

포도가 살아있는 것처럼 탱탱하죠? 여기에 실린 포도들은 농협을 거쳐 백화점이나 마트를 거쳐 여러분들의 밥상에 전해질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 날 작업한 포도는 특과 상 두 등급이었는데 상이 5Kg 한 박스에 만 오천 원이라고 합니다. 물론 유통 과정을 거쳐 소비자 가격은 차이가 있겠지만, 하루 가서 일해보니 결코 비싼 금액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품앗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무지 쨍쨍한 날씨였지만 뿌듯함을 안고 돌아가는데,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겁니다. 고모가 하시는 고추 하우스에 곧바로 고추를 따러가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하우스라니, '아! 이거 잘못왔구나'라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하더군요. 

고추밭에 들어섰는데 '하하, 이건 좀 아니다' 싶더군요. 고모네 고추밭은 쇼트트랙 경기장처럼 코너까지 있었습니다. 청양고추, 풋고추. 오이고추. 고모의 욕심이 조카의 재앙의 하루를 불렀습니다. 찜질방같은 이 곳에서 고추와 사투를 벌어야 한다는 각오로 박스를 집어들고 들이대기 시작한 한시간 정도 후.

"뚝,뚜둑!" 고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폭우가 하우스를 뚫을 기세로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추 하우스는 고모네 포도 하우스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고, 더 이상 딸 고추는 없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추 하우스 주위에 물이 차올라 발 디딜 틈도 없었는데요, 평소에 아끼던 청바지와 제일 비싼 신발까지, 비맞기 딱 좋은 복장이었죠.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오는 길에 얕은 비를 맞으며 깻잎 밭에 한번 더 들러 깻잎을 따고 고모댁에 돌아오니 비가 자동문처럼 그치더군요. "이런 염X" 씻고 방에 들어가니 먼저 온 형이 상의 탈의를 하고선,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더군요. '동생이었으면 발로 차서 깨웠을 거야'라는 상상만 잠시 합니다.

방에 있으니 영 기분이 꿀꿀해서 음악좀 듣자 싶어 차에 올라타 CD를 넣으려는데, 형 차엔 CD 트레이가 없더군요. 정말 최고의 하루였죠!! 그렇게 웃지만은 못할 하루를 뒤로하고 차에서 꾸벅 꾸벅 졸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나절 지났는데 이틀이 지난 것 같은 기분, 아시는 분?

반나절 딴 포도를 꺼내 씻고 쳐다보니 고모와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스치더군요. 같이 일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농사를 지으시는지 보고 느꼈기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음식 앞에서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니 하루 비맞은 것이 배부른 불평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말입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는데 저는 비를 맞고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닌가 싶네요. 평소에 하지 않던 궂은 일에 대한 불평, 비싼 옷이 젖었다는 것에 지나친 몰두를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끈기나 열정 없이는 포도밭 그 사나이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만요. 힘들기도 했지만 땀의 가치를 느끼고 온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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