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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Cinema

연가시, 300만이 전염된 3년만의 과도기작

by 라이터스하이 2012. 7. 17.

간만에 찾은 극장, 그 넓은 공간의 야심한 시각. 관객은 나와 여자친구 두명 뿐이었다. 팔걸이도 맘껏 비벼보고, 누워도 봤다.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2시간이 지난 마음속 한켠에는 뭔가 더 원하고 있었다. 본전 생각이 목마른 보상심리였다. 숫자에 민감한 대한민국 사람이어서일까? 입소문에 발동한 네티즌이어서일까. 국내 영화 최단기간 200만을 돌파했다는 연가시. 영화를 보고 난 지금은 이미 300만을 훨씬 넘었단다. 극 중 연가시에 전염된 그들만큼이나 빠른 속도다. 누군가 수면 아래에서 굉장히 노력했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소재는 누가 뭐래도 좋았던 연가시였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냉정한가?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다이나믹하고 기발한 소재를 긁어왔음에도 후반부의 몰입도는 굉장히 떨어졌다. 연가시에 대한 디테일도 아쉽다. 사람은 죽는데 연가시에 대한 묘사는 기대만큼 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주제가 가족이라지만 그 가족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소재인 연가시를 제대로 빨아먹지 못한 느낌이다. 명색이 타이틀로 등극한 주요 소재 연가시인데 말이다.

 

연가시의 부족했던 디테일과 생명력 결여 때문일까? 후반부에는 좀비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을법한 물에 빠져 죽는 좀비떼의 행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명민의 앞길에 3단 연속 바리케이트를 친 것은 이 영화의 뒷담화로 두고두고 회자될 확률이 높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신라의 달밤, 주유소 습격사건, 맞짱으로 나름의 색깔을 가고 있었던 박정우 감독. 소재 하나로 시작되는 각본에 있어서 꽤나 유쾌한 상상력을 보여주던 감독으로 기억한다. 300원짜리 라이터를 뺏겨 지구 끝까지 따라갈 기세를 보여준 라이터를 켜라. 이 백수 주인공에게 300원짜리 라이터는 전 재산이었고, 세상으로부터 받는 그 스트레스의 한계선인 헬 게이트가 열리는 도화선이 된다. 말이 안 되지만, 또 말이 되는 스토리가 깔려있다. 연가시에는 그 끈끈한 스토리의 매듭이 너무 아쉽다.

 

물론 박정우 감독의 지금까지 작품과 3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최근작이 2008년 맞짱인 그의 필모그라피를 훑어보면 분명 연가시는 그에게도 나름 큰 스케일일 것이다. 라이터를 켜라와 같은 하나의 소재,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맞짱처럼 특정 장소가 포커스인 작품이 많았던 박정우 감독에게는 말이다.

 

연가시에 감염된 감염자들이 좀비떼의 행렬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연가시가 길가에 즐비했어야 했고, 물에서 번식하는 연가시의 성행기라면 가을 가뭄이 배경이 아니었어야 했다. 2012년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몰디테일과 개연성은 연가시의 숙제고, 박정우 감독의 새로운 과제다.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는 심정으로 제작한 연가시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더 다듬어졌더라면, 흥행보다 조금 더 작품성에 포커스를 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지울수가 없는 연가시다. 3년만에 돌아온 박정우 감독. 그가 보여준 작품들로 웃었기에 연가시는 과도기작으로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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