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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Etc

수트입은 남자앞에 두시간 동안 벌어진 기막힌 마법

by 라이터스하이 2011. 6. 1.

조금 전 2시간의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했다. 지금의 난 마치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학교인 '호그와트'에 다녀온 기분이고 아직도 약간은 얼떨떨함에 사로잡혀 있다. 평소 받지 않던 대접을 몰아서 다 받은 탓일까? 2시간 동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 마법의 빗자루는 바로 아래 저놈이다.
 
 

얼마 전 형의 결혼식에 거금 주고 샀던 이놈을 난 그리 좋아라 하지 않는다. 불편하고 답답하고 귀찮다. 어차피 잠깐 학원에 등록만 하러 가는 간단한 외출이었고, 밖을 보니 날씨도 꾀죄죄하고 그다지 옷을 골라서 입을 기분이 아니었던 찰나에 이 녀석이 보였다.

'에이 비싸게 주고 샀는데 그냥 입고 나가지 뭐' 하며 저 그림 그대로 옷걸이만 빼고 쥐새끼(특정인물 비하 발언 아님. 신고하지 마세요)처럼 쏙 들어간다. 3초 만에 입었다, 뿌듯하다. 씨익 쪼개며 머리는 대충대충 구두도 우당탕탕 신고 나갔다. 


집을 나와 횡당보도에 곧 바뀔 신호를 기다린다. 내 앞에는 고딩으로 보이는 한 명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운동화를 신고 달려나갈 준비를 이미 하고 있고, 뒤에는 한 아주머니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신호가 바뀌기 10초에서 15초 정도는 남은 것 같은데 역시나 고딩이 먼저 치고 나갔다. 잠시 고민하다가 5초 정도 후 나도 조금 빨리 건너갔다. 그런데 다른 곳을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러다가 아직 빨간불인 걸 확인한 뒤 백스텝을 밟고 다시 몇 초 후 파란불이 켜지자 다시 건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주머니는 멍을 때리시며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분명 고딩이 스타트를 끊기 시작할 때는 미동도 않다가 내가 건너가기 시작하니 내 뒷모습만 보고 따라오신 것이다. 왜일까? 그 몇 분의 시간에 아주머니는 단지 수트를 입은 내 뒷모습을 보고 이미 신뢰를 했고 내가 법을 어기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수트 하나로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택시를 타고 5분 만에 등록을 해버리고 갈 작정으로 학원에 도착했고 인사를 하고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받고 싶은 교육은 국가에서 80퍼센트를 지원해 주는 것이었고, 담당자와도 두 번 정도 통화했었다. 내가 내는 돈은 8만원 이었지만 20분의 통화 시간에 수많은 질문을 했고, 많은 말을 시켜서 내 이미지는 사실 그리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두 가지 종목을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두가지를 평일+주말 다 들으라는 것이었다. 두가지 종목합의 금액은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이었다. 이미 전화 통화로 쫌팽이 멘트를 그렇게 날렸는데 막상 오니까 두 가지를 다 들으라니 내가 돈이 많아 보이나? 평소에 길거리의 클럽의 삐끼에게 명함은 받지만, 브랜드 매장이나 옷 가게에 가도 비싼 코너로 안내하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닥 있어보이는 외모는 아닌 내가 '당신에게 이 정도 학원비는 당연하잖아요.^^' 라는 표정의 제안을 받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제 약간의 확신과 재미가 붙어서인지 이미 볼일이 끝난 나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는다. 마트에 들러 담배를 산다. 그 마트는 내가 출석부를 매일 찍는 마트고 아주머니와도 아주 친한 이웃으로 지낸다. 그런데 살짝 아쉽게도 아주머니는 없고 딸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담배를 사고 주머니에 라이터가 없어서 하나 달라고 하자 이 자제분이 라이터 종류를 더듬더듬 하시더니 제일 비싼 천원 짜리 라이터를 집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나는 라이터도 천원짜리 쓸 것 처럼 보이나 보다. 계산하고 나가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힐끔 보시고 내 옆을 휙 그냥 지나가신다. 나를 못 알아보신 것이다. '헐....;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니 1-2초 보시더니 "아~! 난 또 누구라고, 총각이었네?" 하신다. 참고로 이 아주머니는 아직 50대 초반 정도고 평소에 내 뒷모습만 보셔도 알아보시고 뒤에서 인사 하시는 분이다.


노홍철의 이 CF 기억하는가? 옷 한벌이 이미지를 바꿔놓는다. 수트의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오늘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화장한 것도 아니고 머리를 신경써서 세운 것도 아니었으며 단지 귀찮아 수트를 입고 나갔을 뿐이다.

당신에게 불편한 옷 치부 받으며 '제5선발' 정도로 기억되던 수트는 오늘 내가 겪은 일 처럼 조금의 불편함을 주는 대신 안정감과 신뢰를 준다. 나처럼
수트의 재발견을 느꼇다면 당신의 수트를 꺼내라, 그리고 오글거리지만 한마디 하자. "미안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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