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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Variety

무한도전 토토가로 본 이기는 예능의 기술

by 라이터스하이 2014. 12. 31.


여행을 다녀와 늦게 보게 된 무한도전. 예전 무한도전 100분 토론이었던가요, 김희철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무한도전 팬들은 본방을 보지 못해도 언젠가는 볼 것이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 같은 게 있다고. 유일하게 보는 예능이자 나름 무도 빠를 자처하는 나 역시 그중 하나지 싶습니다. 이번 특집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죠.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토요일 예능의 최고를 보여줬습니다.

백 투 더 90s. 터보, 김현정, 조성모, 지누션, 이본, 소찬휘. 90년대 가요계 르네상스를 겪었던 그들의 귀환은 나가수 이후에 큰 감동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시상식 자리라면 모를까, 그런 톱스타들이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니까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샀었던 테잎이 룰라의 2집이었고, 두 번째로 산 테잎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타이틀인 앨범이었습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감성을 키워나갔었죠. 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에 잠기는 동시에, 뭉클함과 털끝이 서는 쾌감을 맛봤습니다.



무한도전은 장수 프로그램으로 기획력이면 기획력 연출이면 연출, 이미 자타공인 된 작품이고 브랜드입니다. 토토가는 그 집약체라 불릴 만큼 저에겐 또 한번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특히 타이밍과 연출력이 눈부셨던 토토가 였습니다. 



타이밍
연말, 다들 모여 송년회를 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게 나이이야기입니다. 특히 30-40대에겐 한 살 한 살이 예민하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33번째 생일이 4달 앞으로 다가온 저 역시 그중 하나가 될 텐데요. 평생 요정으로 남을 것 같은 SES가 애엄마가 되고, 관절의 마찰로 몸이 튕겨 나가는 듯한 착시를 보여주었던 김정남이 중년이 된 것을 보니 애잔하면서 한켠으로는 위안이었습니다. 펄펄 날아다니던 당대 최고급 연예인들과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나름의 위안이랄까요. 허탈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은 거죠. 



연출력
90년대 드레스 코드, 360도 카메라 마사지 등. 그때의 화면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애쓴 모습들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무대 세팅은 말할 것도 없겠죠. 패러디에 정평이 나 있는 이유 또한 이런 디테일에 있구나 싶게 만들어 줍니다. 왜 이번 특집에서 유재석이 mc를 보지 않는 거지? 조금 의아했지만, 그 역시 의도된걸로 보였습니다. 박명수와 정준하의 어색한 진행이 90년대 그 시절을 떠올리며 보니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21세기형 진행에 최적화된 유재석보다, 어설프고 기계적인 그 2명에게 mc를 맡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특집들보다 웃음코드가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해결도 어느 정도 해준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들 입 벌리고 멘트가 끊긴 대기실,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밥값을 하는 유재석은 역시 무한의 존재감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그 때는 참 쉬운 안무와 노래에도 이렇게 즐겁게 놀았다는 여러 자막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한도전만의 풍자가 가미되 찰진 특집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번 특집은 기획과 연출 모두 좋았지만, 타이밍이 무엇보다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보통 이맘때 쯤이면 새출발에 대한 이슈나 특집들이 많죠. 무한도전은 새출발보다 나이먹어가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사했고, 위안이란 따듯한 선물까지 안겨줍니다. 

다른 예능들 역시 최근 사랑받고 있는 프로그래이 많고, 춘추 전국시대라 불릴만큼 공중파와 지상파를 막론하고 다양화된 채널들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무한도전만 고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또 한번 보여준 것 같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걸 잘 아는 무한도전은, 가끔 내부에서 자체검열을 하기도 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고개숙여 인사할 줄 아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성숙함이 빚어낸 한 편의 빈대떡같은 특집이 바로 토토가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무한도전 편집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 감동적인 대박 특집에서 다음주에 계속이 왠말입니까. 이거 악마의 편집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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