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어봤어? ]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당신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끌렸던 책이다. 최근들어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슬럼프보다 심각했기에. 그래서인지 첫 문장만 읽고도 머리가 시원했다. 마치 벌써 한 권을 정독한듯.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작가에게 가장 무서운 순간은 잘못 썼을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때다". 200% 공감한다. 이건 아마추어건 프로건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의 장난질이다. 내놓라하는 작가들 역시 잘 써질 때보다 안 써질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어쨌거나 글쟁이에게 이 말조차도 그리 큰 위안은 아니리라. 글로 밥먹고 사는 그들도 머리 싸매며 사경을 헤매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절실함이 부족한 탓? 생각만큼 팔리지 않은 첫 책에 대한 비참함과 허무함? 내 경우는 역시 욕심이었다. 특히 첫 문장 증후군이 심한 탓에 두 달 정도를 힘들었다. 너무 큰 꿈을 꿨고, 급했고, 빠르게 올라서고 싶었다. 글보다는 마음의 문제다. 첫 숟갈에 배부르고 싶은 작가의 빠른걸음이 빈틈없는 첫 문장을 갈구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는 스스로의 강박계발이다. 그런건 거의 없다고 봐야 맞다. 그 사실을 인정할 줄 알아야 초보작가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100줄의 문장 중에 한 문장이 최고라면, 그것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해야 한다. 정말 좋은 문장은 100번 이상의 생각과 많은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리가 없다. 그러면 냉정하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그 경험이 쌓이고 생각이 숙성될 때 까지 마냥 기다릴것인가? 아니면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대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질문을 매번 해야하는게 작가의 숙명이지만, 피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이런 책이 팔린다. 나같은 놈에게. |
집필과정에서 대게 '첫 문장부터 왜 이리 거지같은가?' 라는 생각이 들면 그 날은 쭉 정체다. 이미 시작부터 비참해진 펜은 점점 무거워진다. 첫 문장부터 써내려갈 수 없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내면의 검열관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심판자라고 표현한다. 머리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어휘 하나까지 검사하는 심판자다. "이 어휘는 굉장히 진부해, 이 부분은 누군가 썼던 문장 아닌가?", "유니크함이 전혀 없잖아." 이럴 때는 "세상에 싸워야 할게 얼마나 많은데 자신과 싸워요? 라는 김정운 작가의 말에 기대기도 한다. 첫 문장부터 써내려갈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나쁘지 않다. 대게 책쓰기 책이라고 한다면 스킬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들어 작가드르이 멘탈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작가의 공간 역시 작가들의 내면을 건드리고 있다. 작가들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멘탈적 이유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오늘은 글이 안나오는 날이니까 내일 써야지, - 집안의 중대사가 있는 날 - 여자친구랑 싸운 날 - 안가도 죽지는 않지만 소소한 모임 필자가 주로 대는 핑계들이었다. 글로부터 도망가게 만드는 유혹들이다. 이런 여러가지 핑계들을 이렇게 대하라고 책속 저자는 말안다. "글쓰기 공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잡다한 업무, 극적인 사건, 심리적 위기나 집안일에 말려들고 있을 때, 정해진 시간에 스스로 경종을 한번 울린 다음 이 모든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
명쾌하다. 속이 시원한 것은 나 혼자뿐인가? 이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억울하게도 무릎을 쳤다. 이미 알고있는 문장이고 해본적이 있는데도 또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결국 두려움 때문이라고 느껴졌을 때의 묘한 카타르시스도 있다. 그 두려움의 시작은 글을 쓰지 말아야할 이유가 되버린다. 작은 상황이나 일 하나에 민감한 작가들을 위해 이 책은 공간이란 컨셉을 잡았다. 현실속의 공간, 내 머릿속의 공간, 유형 무형의 공간들을 이야기한다. 내 경우는 책쓰기를 위한 리모델링을 계획하기 위해 샀지만, 더 깊은 곳까지 빨려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
이 책에서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작가들이 침투해야할 공간이다. 필자는 이 책을 보고 내 책상의 구조를 바꿔버렸다. 제3자가 아닌 지인이 보더라도 이건 좀 답답하잖아 싶을 정도로. 노트북의 좌우에 책을 랜덤방식으로 세워 키워들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고자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다소 극단적인 방법이라 꼭 해보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지는 않다. 내가 했던 이 짓(?)은 결코 바람직한 짓은 아니다. 그래도 뭔가 하나는 얻었다. 정말 안써지는 날은 무슨 짓이라도 해야된다는 것이다. 매번 작가들이 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는 육체적 노동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육체를 움직여 뇌가 활성화될 수 있다면 일단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첫 문장만 써내려갈 수 있으면 되니까. 억지스러움도 묘약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뭔가 시도해보자. 삽질도 10년이면 역사라고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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