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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Cinema

문라이트의 성공 비밀, 오스카데이&시네마톡 후기와 해석

by 라이터스하이 2017. 2. 26.



이 번 주말은 최근들어 가장 바쁜 이틀이었다. 오전에는 상품 체험, 오후에는 영화 관람. 오스카 시상식 생중계 기념으로 CGV에서 마련한 이 번 행사에 참여해 영화도 보고 행사도 즐겼다.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미리 즐길 수 있다는 취지로 진행된 오스카데이. 주요 후보작들의 굿즈 판매, 재즈 콘서트, 게스트 초대 등의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 번 행사에서 라라랜드와 문라이트 중에 문라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포스터 때문이다. 감성적이기도 하고 무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엠마 스톤이나 라이언 고슬링의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극장에서 혼자 보는 모습을 상상하기 싫었던 이유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서민 향수 날것 같은 포스터가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문라이트는 네이버 영화에서 평점 8점을 넘는 영화다. 원작(극작가 터렐 앨빈 메크레이니의 '달빛이 비틸 때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이 있는 영화를 이렇게 높은 평점을 받으며 그려내는 건 기적이라 봐도 될 것이다. 그 포털에 적힌 배경 스토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영화라는 것이 줄거리만으로 당연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 영화는 특히 그렇다. 내가 본 미국 감독의 제작 영화 중에서도 섬세하기 때문이다. 그 섬세함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어느 정도의 정보는 알아두어야 깊이 있게 다가온다는 말을전하고 싶다. 






솔직히 2/3정도 시점 쯤에는 이 영화를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어 지루한 구석이 있었다. 이 영화가 퀴어 영화고,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라이트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아스하우스 영화다. 그러니 주류 상업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따분할지 상상해보라. 영화 상영 후의 시네마토크가 없었다면 이 영화의 진정한 의미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섬세함도 발견해내지 못하고 내 속에서 사장된 영화였을 것이다.






극에 다른 섬세함


이 영화의 섬세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첫 번째 요소는 색깔이다. 포스터를 보면 한 사람의 성장기를 그려낸 영화답게 3인물들을 겹쳐놨다. 1,2,3챕터로 이뤄진 이 영화는 필름영화로 영화제작을 하는 마지막 세대인 배리 젠킨스 감독이 후지, 아그파, 코닥의 필름 3가지를 사용해 챕터의 분위기를 다르게 표현해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포스터도 새롭게 보였다. 





흰색 옷을 파란색 옷으로 굳이 다시 갈아입고 나오는 장면



거기에 영화 속 분위기와 맞는 컬러도 잘 조합해서 쓰고 있다. 희망적일 때에는 파란색, 갈등의 포화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빨간색이 주로 쓰였다. 파란색 차, 빨간색 옷 등을 보여줌으로써 상황에 따른 컬러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미학적이고 감성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위 장면에서 케빈과 다시 만난 것은 희망적인 메세지를 표현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섬세함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꼭 이런 장면이 필요한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3번째 챕터에서 낡은 냄비를 비추는 장면에서 영화의 쉼표 그 이상의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흑인들의 부유하지 않는 삶을 비췄을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고, 두 주인공의 고요한 시간을 감성적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동양 영화에서보면 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미국 감독의 영화에서 보다보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이런 섬세함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호불호가 꽤 많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채널 CGV 오스카 데이 문라이트 스페셜 시네마 토크



왕가위 오마주와 동양적 색깔


배리 젠킨스 감독은 왕가위 감독과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히 문라이트의 내러티브 구조는 쓰리 타임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 정도로 아시아 감독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이 영화가 왜 감성적일 수 밖에 없는 증거가 드러나는 사실이기도 한데. 실제 영화 팬들이 문라이트와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비교한 장면들이나 오마주를 찾아낸 유투브 영상도 화제가 된 것이 있다. 바로 아래의 영상이다.







영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나 지식이 부족한 나로써는 시네마톡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사람의 영화가 떠오르셨나요?"하는 질문에 아무도 떠로으지 않았다. 왕가위라는 정답을 듣고 나서도 그의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기에 공감할 수 없었다. 영화 매니아 분들이라면 카메라워크나 표현 방법들에서 두 감독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단 한가지 O.S.T 만큼은 현대 홍콩 느와르의 표현 방식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주인공인 샤이론과 케빈의 재회 장면이다. 다시 나타난 케빈은 아기와 별거중인 부인까지 있다고 밝힌다. 내심 실망한 샤이론에게 남은 질문은 나한테 왜 연락했어? 라는 지점이다. 케빈은 내심 술만 마시며 관객들에게 그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케빈 역시 왜 이 먼곳까지 왔냐고 묻지만, 방어적인 대답을 하고 만다. 







'안녕하세요 낯선 분. 

당신 돌아온 것 보니 너무 좋네요. 

못 본지 얼마나 됐나요. 정말 오래된 거 같군요. 

오 저는 저는 저는 너무 기뻐요. 

제게 안부를 전하러 잠깐 들렀죠. 

예전에도 이랬던 거 기억해요. 

오, 정말 오래된...'


그러나 케빈의 대답은 이 영화의 주요 O.S.T인 Babara Lewis의 Hello Stranger 가사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사건과 상황으로 캐릭터의 심리상태를 예상할 수 있는 영화와 달리 느와르에서 봤을 법한 미술과 음악으로 캐릭터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표현방식은 분명 흔한 미국감독의 표현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말 그대로 오리엔탈리즘이라기엔 오마주에 가깝다. 흥미롭고 섬세하고 미학적인 이 영화는 분명 미국영화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다. 






여러가지 동성연애에 대한 정책으로 인해 퀴어 영화의 끝물이 되어가는 지금,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명작임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성공요인으로 퀴어영화로써의 보존가치 정도를 들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오스카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구성 미학과 같은 표현이 이 영화의 백미기 때문이다. 두 번 정도는 봐도 될법한 말 그대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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