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듯 진부한 듯, 짧은 벨소리와 함께 왼쪽 터널 사이로 수많은 불빛들이 벽에 부딪쳐 흩날린다. 그 후, 요란하게 들려오는 굉음소리. 그 너머에 난 서있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벨소리는 이미 울렸고, 내 발 앞에 와있는 열차와 함께 당신은 어느새 내 뒤에 다가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서있다. 내딛는 것 조차 의미없는 듯, 아주 느린 발걸음으로 3번째 칸의 노약자석 앞 작은 공간에 선다.
내 정면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가야하는 사람, 가고싶은 사람, 또는 가기 싫지만 가야하는 사람. 오늘 나는 가기싫은 사람이지만 가야하는 사람이다. 이틀 사이에 두명과 심하게 다퉜기 때문이다. 검은 컬러에 금색 테두리가 있는 카라넥 티셔츠. 약간 달라붙어서 불편하긴 하지만 멋스러움에 불편함을 양보해버린 짙은색 청바지를 입고, 왼쪽 어깨에는 흰 스포츠 가방을 메고 서 있는 내 옆에 바로 당신이 있지만, 난 당신을 볼 수 없다.
나는 대학조교로 있는 친구와 약속을 했고 시내에 있는 대형서점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다. 내 계획은 분명 이것이 아니었고, 내 머리속엔 온갖 잡생각이 요동쳤으며 '짜증나, 짜증나...'란 소리가 후크송처럼 울려퍼졌다. 당신은 호기심과 궁금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당신은 내 상상속에서도 없는 존재이기에 나는 아랑곳 할 수가 없다.
잠시 뒤 다음 정거장의 문이 열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몇명이 내리고 그 두배 정도의 사람들이 빈자리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며 무언가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아! 내 옆에 여자가 서있었구만' 이런 생각이 끝날 무렵 그 여자는 왼쪽 11시 방향 유리창이 있는 폐쇄문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남자들 틈에 끼어있어서 부담스럽나?', '맞은 편 달려오는 전철의 진동을 느끼고 싶은걸까..?' 미친 생각이다. 내 명령대로 생각하지 않는 머리에 한숨을 쉬며 핸드폰 폴더를 연다...폴더를 닫는다... 조금 전의 한숨보다 더 큰 한숨을 쉰다. 답답한 마음을 내뱉을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일까.
15분 후. 상냥함의 표본을 보여주는 목소리를 가진 누나가 다가오는 역이 나의 목적지라는 것을 알려준다. 몇십초 후, 사람들이 유령처럼 지나가고 뒤에서 잡아 당기듯 지하철이 멈춰 섰다. 쌓여있던 잡생각들이 흩어지고 수많은 사람의 의도하지 않은 호위를 받으며 내린다. 당신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한 표정을 보이지만, 이내 허탈함과 궁금증의 싸움에서 궁금증이 이긴 듯 나의 뒤를 따른다.
Continue...
*벨소리가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느낌 상 자동재생이 맞을 것 같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본 내용은 "자작소설"이라고 칭하였으나 실화 위주의 이야기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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