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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Drama

해를품은달, 오글거림을 품지 못한 판타지의 아쉬움

by 라이터스하이 2012. 1. 5.
 

해를품은달, 타이틀부터 뭔가 묘한 신비로움을 품고있는 MBC의 새 수목드라마. 출연진(김수현, 정일우, 한가인 등)뿐만 아니라 팩트나 역사보다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는 픽션 사극이라 이끌렸던 게 사실이다. 거기다 약간의 판타지까지 겸비하고 있다고 해서 최근 쏟아지고 있는 사극들에 비해 뭔가 새로워 보였다.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과 하나의 달'이 있다는 이 드라마는 생각했던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초반부터 빠르게 꾸미고, 죽이고, 도망다니며 지겨움에서 해방시켜 주는 요소들이 많았지만, 판타지를 포함한 장르에 비해 스토리나 전개과정에서는 어느새 손발이 오그라들고 말았다. 국무라는 새로운 캐릭터들은 미래를 뿅뿅 내다보고 있었고, 장남영의 연기는 헉헉거리며 영혼을 내뱉는 듯했다. 이런 장점들을 깍아 먹어버린 개연성과 연출이 속속들이 '해를품은달' 첫회에서 드러나버렸다.

이미 '해를품은달' 첫회에서 '두개의 태양과 하나의 달'은 '삼각관계에 대한 문장'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드라마를 끌고가는 뒷심이다. 뿌리깊은 나무만큼의 화려한 라인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불허전이라 불리는 조연들이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것도 아니다. 남은것은 끈적하고 깨알같은 스토리나 눈을 뗼 수 없는 긴장감이나 연출인데, 첫 회에서부터 벌써 그 지구력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부분은 판타지를 약간 가미한 퓨전사극으로서의 면모가 아닐까싶다. 그렇다고 센세이션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런 새로운 도전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쳐죽인다 해도 다시는 보기싫을 정도로 매번 같은 드라마를 대대손손 물려받을 확률은 적어도 줄일 수 있는 발전적인 시도니까. 그런 장르적 시도에 비해 아직도 이런 장면들을 봐야하나라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들은 있었다.

역시 가장 임팩트가 강했던 건 두 주인공, 이훤(김수현 아역)과 연우(한가인 아역)의 첫 만남이었다. 이유없이 등장한 나비와 이유없이 따라가던 연우(한가인 아역)낭자. 사다리에서 급 떨어져 이훤(김수현 아역)과 서로 끌어안고 잠시 기절했다가 동시에 눈을뜨는 장면까지. 설정은 그렇다치자. 그런데 정말 수백번도 넘게 보았을 이런 적나라한 오글거림을 제대로 희석시키려면 경험많은 연기자나 미적인 요소들이 압도를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도 나름 그 상황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해를품은달'의 이 장면은 그냥 말 그대로 적나라한 오글거림을 이겨내기는 무척 버거웠다. 차라리 길가다가 헌팅하는 설정이 나을 뻔 했다. 나름 판타지스럽게 표현해 보이겠다는 의지였을지는 모르겠으나 필연이라는 느낌보다 과한 설정이라는 느낌이 더 커져버렸고 몰입에 오히려 방해되는 장면이었다.

이어진 양명(정일우 아역)의 격투신에서도 이 적나라한 오글거림은 묘한 일관성을 띄고있었다. 두 대를 맞을 때까지 싸움을 전혀 못할 것 같은 세자의 형이 갑자기 초사이언처럼 분노하더니 발차기 한방에 악당은 멀리멀리 날아가 냅다 꽂혀버린다. 뒤에 있던 구경꾼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지 않은것이 이렇게 고마운적이 없었다.

나름의 새로운 시도로인해 괴리감을 느꼈을 시청자들을 위해 익숙한 클리쉐나 설정을 삽입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이 시너지를 얻으려면 그 장면 또한 적어도 새로운 시도나 분위기로 신선한 느낌을 주어야 할 것이다. 예를들면 동네 잔치에서 부킹으로 만난 남녀 주인공이라던가, 3대 이상 맞으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성격의 세자 형이라던가 말이다. 왜 매번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뒹굴어야 하고, 두 번을 쓰러져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지 모르겠다. 조선시대에도 분명 그들만의 판타지는 있었을텐데 말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드라마가 이 '해를품은달'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틀에 박혀 이제 다시 보아도 감흥보다 감정이 소요되는 이런 장면들에 왜 이리도 집착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평생 봐오던 장면이라서? 이제는 안 넣으면 허전해서? 성공하는 드라마들의 공통점중 하나라면 단연 몰입니다. 그건 아마 넣는 것보다 버리는 것을 잘 버렸을 때 더 성공적일 수 있다. '해를품은달'이라는 타이틀처럼 장르의 신선함이 오글거림을 품어주지 못한다면 그냥 버리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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