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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Variety

사망토론, 이상준이 더 쓰레기가 돼야 하는 이유

by 라이터스하이 2014. 2. 25.


개그콘서트의 독주체제에 제대로 바리케이트를 친 코미디빅리그. 개콘의 레임덕을 예고했던 코미디빅리그도 이제 나름 자리 잡은 그림이다. 역시나 최초라는 인식의 개콘 옆에서 깜빡이를 넣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들을 추월한다는 것은 코미디빅리그에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1.5인자 정도의 포지션을 만들어낸 저력은 앞으로도 개콘을 언제든 저격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예쁜 여자 게스트들을 섭외하고 잘나가는 아이돌을 섭외하지 않더라도 코미디빅리그는 마이너 감성을 제대로 활용하면서 빠르게 케이블 공개코미디를 잠식해 나갔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리그제를 도입하다보니 바로 안정적인 코너가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에야 옹달샘마술단 사망토론 같은 코너가 있지만, 초기에만 해도 이것이 코빅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보는 입장에서도 재미는 있는데, '이게 도대체 언제까지 갈까' 라는 양날의 검이었다. 코너들의 빠른 회전율로 매번 다른 코너들이 쏟아져나오고 새롭기는 했지만, 매번 평타 이상을 쳐주지 못한다는 게 함정이었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매번 코너마다 빵빵 터트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개콘의 안정적이지만 지나친 편안함에 코미디빅리그로 갈아탄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작은 불안감은 예상된 앞날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부터 코미디빅리그는 제대로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롱런하는 코너들이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피날레 장식을 맡은 사망토론의 이야기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처음 사망토론을 봤을 땐, 이거 뭐 이런 코미디가 다 있나 싶었다. 이상준이 내뱉는 말들이 어느 정도 맞는 말도 맞는 것 같은데, 어딘가 불편했다. 불편한 영화의 대명사 김기덕 감독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코미디가 이 정도면 많이 불편했다. 정말이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 이유는 사망토론을 10회 정도 더 보고 난 후에야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묘하게 긁어대는 말초 자극


사망토론은 누군가 하나는 오늘 집에 못 갈듯한 100분 토론의 뉘앙스가 아니다. 웃음에 공감과 객관적인 잣대라는 장치를 섞어 재미를 주는 콩트에 가깝다고 봐야 할 거다. 사망토론을 보다 보면 그들이 내주는 주제만큼이나 어려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이거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매번의 주제마다 본능과 이성 사이를 갈라놓으면서 자극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몰입에서 빠져나오기엔 이미 늦었었다.


결혼 후 로또 20억에 당첨되면 와이프에게 이야기 해야하나? 라는 질문. 한 번쯤 제대로 놀아보고 싶다는 판타지, 아직 미혼인 수컷 남자들이라면 본능적으로 가져볼 만한 환상이다. 물론 결혼한 뒤의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남자라면 한번쯤 상상해 보는 일이다. 그렇다고 옆에 있는 여자친구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끄덕끄덕 거렸다간 며칠을 고생할지 모르는 두려움도 가져야 하는 남자들. 몰래 흐믓한 상상을 하며 투표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만약이니까.




Out of 이성, 본능적이고 극단적인 투표율


사망토론의 흥행 이유를 한 줄로 바꿔보자면 아마, '익명성이 보장되는 투표로 내면의 본성을 드러내 참여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다. 그러니까 이성의 필터링을 가하지 않은 본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옆에 여자친구나 와이프가 있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투표율이 거의 동급이라는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맞다. 어차피 개그프로그램인데 정신줄까지 지켜가며 대통령 뽑듯 이성을 컨트롤 할 필요가 없다. 내 본능이 가는대로 버튼을 누르고 웃다가 떠들고 집에가면 그만이다. 처음과 달리 사망토론의 투표율은 박빙이 많아졌다. 이제 관객들도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증거다. 남녀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릴 수 밖에 없는 '로또 20억'과 같은 주제는 성별토론으로 마무리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1%의 본능을 끌어내는 카타르시스


본능만 있다면 동물이고, 이성이 있다면 지성인일거다. 사망토론의 투표는 시청자에겐 재미지만, 객석에 있는 그들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매력이 있다. 스트레스의 해소다. 내면에 숨어있는 1%의 본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카타르시스 말이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부위를 마사지 해주거나 안마를 받으면 엄청 시원하듯, 현실 속에서 표현해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갈증을 버튼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사망토론의 투표결과를 보면서 "와 쓰레기들 많구나~" 이런 생각도 해봤지만, 내가 저 자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한다면? 장담은 또 못하겠다. 공개 코미디의 매력이라면 바로 시청자는 알 수 없는 이런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사망토론은 누구나 궁금해하는 주제를 갖고 토론을 한다고 시작전 알린다.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본능의 대리만족을 제대로 채워주고 있는 코미디빅리그의 사망토론. 덕분에 이상준은 호불호의 아이콘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결국 사망토론의 롱런여부는 이상준이 얼마나 쓰레기가 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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