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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2014 · Kansai

재앙 리콜러 두 마리의 간사이 여행기 #5 - 고베

by 라이터스하이 2014. 10. 19.

 

간사이 여행에서 감성에 젖고싶다면 고베를 빼면 안된다. 떠나기 전 교토와 고베 사진에 꽤 오래 꼳혀있었다. 맞다, 난 야경 매니아다. (부산야경 투어를 기획해 혼자 밤 12시에 출발해 새벽 5시까지 마린시티와 광안리, 수변공원, 황령산, 오륙도까지 찍는 몰상식한 짓도 가끔은 서슴치 않는) 삘 꼳히면 달려야 하는, 그래서 고베는 내게 남다른, 그런 곳이다. 평소보다 빠른 기상이 그 증거다.

 

 

그래도 먹고는 가자.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밥은 먹어도 시간을 좀먹기는 싫었다. 폭풍흡입으로 아침식사를 마친다. 눈은 반쯤 감겨 분명 어디 갖다놔도 볼품없는 두 마리인데, 여행열정은 닳아오른 후지산이다. 리뷰를 쓰려면 메뉴명을 알아야할텐데, 여기가 요시노야라는 것 밖에는 기억이 안난다. 아시는 분은 제보해 주시기 바란다.

 

 

일본에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건 다름아닌 바로 사철이었다. '타고난 방향치 & 길치'인 나와 '구글맵 찬양자'인 친구의 노력에도, 십중팔구는 환승게이트를 찾아 헤매야했다. 

TIP
1. 구글맵 + 바디랭귀지만 갖고 있다고 일본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말자. 패기를 살려 주위 사람들을 활용하자. 절박하다면 귀가 아닌 눈으로 알아들을테니까. 그리고 운 좋게 한국 사람을 만날수도 있다. (필자는 길을 물어본 열댓명 중에 2명이 한국인이었다). 다녀와보니 해외에서는 누가 쳐다봐도, 쪽이 좀 팔려도 괜찮다. 그 팔린 쪽이 병행수입 되지는 않더라.
2. 오사카 밖으로 여행을 하려는 자, 간사이 스루패스를 사라. 싸다고 오사카 주유패스 사는 순간, 일본의 살인적인 교통비의 가중처벌을 받는다.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 중에서 2곳 이상 둘러볼 의향이 있다면 무조건 '간사이 스루패스'다. 샀다면 후회하지 말고 쿨하게 돌아서라. 어쨌든 본전이니까.
 

 
사진정리를 하다보니 대관람차 컷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우리 이거 안 탔잖아?" 
"응" 
"뭔가 이상하다 이거..." 
생각해보니 우리는 우메다에서 한큐 사철을 탈 때 마다 여기서 담배를 폈다. 그래서 다른 날 똑같은 사진들이 몇개씩 넘쳤던 거다. 


그렇게 드디어 고베다. 
그런데....
하늘이 또 정색중이다... 
젠장!
이제 비쯤이야 '드루와!' 한다. 
그런 생각도 잠시, 고베의 건물들이 아주 토이스토리다. 색감도 좋고, 정렬도 좋다. 네덜란드였던가? 공간을 아끼기 위해 집을 슬림하게 짓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만큼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귀엽다.  

 

 
재앙 리콜러 2마리의 고베투어 코스
키타노이진칸 - 스타벅스 - 고베포트 타워 - 모자이크
 
"키타노이진칸 호멘가 코찌라데스까?"
친구의 구글맵과 상관없이 나는 이제 말 안통하는 일본인들의 반응에 재미가 들렸는지,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전날 외웠던 일본어를 써먹어 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육교위에서 걸어오는 아주머니를 발견했고, 벼락치기로 완성된 속성 스피치를 패기있게 날렸다. 
 
"아노, 스미마셍. 키타노이진칸 호멘가 코찌라데스까?" (저기 죄송합니다. 키타노이진칸이 이쪽인가요?)
 
아주머니는 내가 가야할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네이티브 스피커의 실력을 뽑냈다. 한국에서는 이런 짓 잘 않하지만 빨리 아주머니를 말려야했다. 모르면서 끄덕거리는 것도 예의는 아닐거라 생각했기에 다 듣지 않고, 
"스미마셍, 와타시와 캉코쿠진데스...." 
 
차분히 걸어오던 액션과 달리 큰 제스쳐를 취하며 아주머니는 말한다. 
 
"한국분이세요?"
"어? 네."
"하하 한국분이셨구나?"
"네!, 저희가 이번에 간사이 여행을 왔는데, 키타노이진칸 가는 길이거든요. 이쪽이 맞는 것 같긴한데... 보이지가 않네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아 키타노이진칸~ 저기 편의점 지나서 좌회전 하시면 오르막길이 나와요. 그 길로 쭉 올라가시면 되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일본에서 산지 2년정도 되셨다고 했다. 한국말을 하시긴 했찌만, 발음이 조금은 일본화 되셨더라. 한국에 다녀오신지도 그 시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서로 너무 반가워했다. 해외에서의 자국민과의 만남이 이리도 반갑다니. 여행 초보가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이다. 고베까지 날아오길 잘했다 싶었다. 뿌듯함과 따뜻함이라는 이름, 여행의 새로운 매력을 안고 다시 길을 간다.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조금 더 걸으니 키타노이진칸이 보이기 시작한다. 편의점에 잠시 들러 아이스크림 하나와 붙이는 파스도 하나 샀다. 입구에 들어섰다. 친구가 입고 온 파란셔츠와 깔맞춤을 한 듯한 파란 깃발의 건물을 시작으로 예쁜 유럽풍의 건물들이 빼곡하다. 

 

 

작년에 갔었던 쁘띠프랑스가 떠오르는 미장센이다. 예쁘다... 그런데 예쁘기만 하다. 남자둘이 오면 이렇게.... 예쁘기만 하다. 간사이의 다른 관광지에 비해 키타노이진칸 사진들이 적은 이유가 예쁘기만 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라면 소나기 때문이다. "우산 사서 돌아다니자"라는 친구의 말을 쿨하게 씹은 반성이 시작됐다. 일본여행에서 하늘이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면 일단 우산은 사고보자.

 

 

 

자, 이제 그 유명하기 짝이 없다는 고베의 명물 스타벅스다. 외관은 정말 최고다. 여기서 살아보고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커피맛은? 외관의 기대감을 생각하면 형편없다. 물론 내가 주문한 라떼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꽤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다른 베리에이션에 대한 기대치를 말아먹는 그냥 그렇고 그런 맛. 그래서인지 본전정신이 들끓어 오르는데, 담을 수 있는 것 없는 것들을 모두 담으려 셔터를 다시 움직였다.

 

 

고베투어 에어리어 북쪽에 위치한 키타노이진칸이라면 고베 포트를 비롯한 나머지 장소들은 지도상 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500엔을 주고 고베투어 버스를 탑승했다. 5000원 정도면 나쁘지 않아 보였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차이나 타운과 모토마치를 돌아본다. 야시장 느낌보다는 조금 고급스러운 뷰지만, 차이나타운 고유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만끽할 수 있으니, 들를 수 있다면 들러보길 추천한다.

 

 

다렸던 버스를 타고 또 다시 10분 정도,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셔터질 포텐이 여기서 터진다. 여기는 뭐 다른 설명이 필요없어 보인다. 사진으로 감상하자.

 

 

언제부턴가 다리와 바다가 있는 곳이면 달려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돌산대교 같은 야경을 품고 있다면 이제 나를 꽤 쉽게 유혹할 수 있다. (일본까지 가서 내가 브릿지 덕후란 걸 알았다.) 그 잘빠찐 다리 주위를 현대 문명이 감싸고 있다. 고베 투어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고베 타워와 모자이크도 보인다. 들락날락하는 유람선과 대관람차의 무브먼트가 고베의 고요함에 수를 놓는다. 그 다소곳한 여유로움을 사진으로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아쉽다.

 

 

나 : "야, 여기 x나 예쁜것 같은데?"

친구 : "어"
나 : "찰칵,찰칵"
친구 : "찰칵, 찰칵"

 

 

 

또 하나의 재앙

아침일찍 고베에 도착해 모든 관광을 마쳤을 때가 아마 4시쯤이었다. 다른 날이라면 빨리 돌았다며 두 손을 Put Your Hands Up 했겠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다. 고베 야경이 나에겐 이 날의 최대 하이라이트 였는데, 아직 해가 질려면 2시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다. 그 시점에서 필자는 사상 최대의 결정을 내려야했다. 야경에 강한 배려가 있는 나에게 그 화려한 퍼포먼스를 포기하라는 것은 재앙이다.

친구는 "뭐 기다리면 되지" 했지만 쉽게 "그럴까?"라고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친구가 호텔예약이나 길찾는 데 있어서 엄청 고생한 걸 알기 때문이다. 여행 시작할 때 부터 친구는 내 매니저를 자처하며 사서 고생을 했다. 여행코스는 내가 짰지만, 더운 날씨에 말 그대로 개고생한 친구를 신경 안쓸 수가 없었던 나는 결정을 내렸고, 결국 고베 야경은 다음 일본 여행에서 마무리 짓기로 마음 먹는다.

 

 

호사다마

나름의 어려운 결정을 하고 역에 도착한 우리. 밥을 먹어야 하는데, 고맙게도 내 친구 도루코(별명)는 호텔에서 갖고 나온 돈이 만 원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친절하게 이야기 해줬다. ^^ 평소 같았으면 "야이씨, X됐네" 했겠지만, 그 때 까지는 아직 배려심 가득찬 성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싸고 맛있는 곳은 세상 어디든 있을거야'라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슴에 품고 역근처를 뱅뱅 돈다. 그런데 여기... 꽤 비싸다. 맛도 없어 보인다. 삐끼들의 유혹질은 오히려 반감만 될 뿐이었다. 

한 바퀴를 싸그리 돌고 입구에 다시 들어섰을 때. 포스 가득한 간판 하나를 발견한다. 사이즈는 작은데 '이거 왠지 오래 장사한 곳 같잖아?' 느낌도 나쁘지 않아 들어가자고 했다. 들어가서 또 한번 놀라야 했다. 서서 먹는 우동 전문점이었다. 할머니 혼자 인사를 하는데, 이런 식당은 와본 적이 없는 우리 둘이었다. 뭐 크게 상관없었다. 공복에 예민해진 우리는 우동 2개와 오니기리 2개를 주문했다. 

 

 

3분도 되지 않아 우동이 나왔다. 역 앞이라 빠르게 먹고 가야 되는 비니지스맨들을 노리는 그런 식당같았다. 우동 한입을 입으로 넘기기 시작했을 때, 우리의 선입견은 신세계를 만나 감탄사로 이어진다. 간사이 여행에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 꿀맛이었다. 4천원 남짓한 가격에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감사했다. 힘든 하루였지만, 마지막엔 꽤 뿌듯한 마음을 갖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간다. 다음은 마지막 후기, 오사카시내 남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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