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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Star & Issue

박지성의 무릎, 그리고 끝나지 않은 도전

by 라이터스하이 2011. 6. 17.

Intro

 



수원공고를 나와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서 교토의 별로 불리며, 4천만이 뜨거웠던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으로 거듭나, PSV 아인트호벤행 여정에 몸을 싣고,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 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믿기지 않는 영입제의를 받아, 최강의 팀들이 경쟁하는 챔피언스리그의 우승도 맛보며 이제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는 박지성.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에게 있어 도전은 가끔은 눈물, 때로는 환희를 주었고, 함께 가야 할 파트너이자 넘어서야 할 라이벌 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전을 상대하는 방법 중에 그는 즐기는 것을 선택했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무릎에 7개의 구멍이 생겼음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작은 박지성



 

유소년 시절 박지성은 공격수로 뛰며 재능이 있었지만, 친구들보다 왜소했고 축구 선수로서의 작은 키와 체격을 갖고 있었다. 수원공고 1학년이었던 그에게 이학종 감독은 "집에서한 2주 먹고 자고 몸 좀 불리고 와"라며 집으로 돌려보냈고 박지성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체격을 선물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정육점을 차려 키를 키워주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전국오지를 다니며 개구리 끓인 물, 녹용, 사슴피 몸에 좋다는 것만 골라서 먹인다.

 

훗날 그는 웃으며 "그때 당시에는 제가 뭘 먹었는지 사실대로 얘기 안 해주세요, 지금은 뭘 먹었는지 알죠"라며 웃음 짓는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던 아들의 꿈과 열정을 믿었던 부모님의 역할이 그를 최고의 선수로 이끌었다.

천운을 타고난 박지성의 성장 



 

"영국이 그렇게 날씨 좋은 나라도 아니고 돌아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구단에서 마련해 준 잉글랜드 그의 집과 하루는 경기장에서 그의 폭발적인 모습과는 비교된다. "가끔 에브라와 테베즈가 클럽에 가자고 해서 몇 번 간 적은 있어요." 라는 말조차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니... 2010 남아공에서 탈춤을 풍차돌리기로 재해석한 이 남자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낙심해 있을 무렵 명지대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박지성은 대학 전지훈련에서 올림픽 대표와의 연습경기에서 중앙선에서 골대까지 약 70미터의 거리를 올림픽 대표 5명을 제치고 골키퍼까지 제치며 골을 넣는 전율의 플레이를 보여주며 올림픽대표팀에 승선하게 된다. 훗날 박지성은 "제가 선수들을 제쳤다는 느낌이 아니라 선수들이 피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라며 너스레를 떤다.

시련과 극복

 




박지성이 정장을 입고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박지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으며 입기 싫은 옷을 입혔던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 경기장. 데뷔 초 무릎의 통증에도 무언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에 무리했고 히딩크는 3만 5천 명의 야유에 힘들어하던 박지성을 결국 원정 경기에만 출전시키며 보호한다. 그러나 박지성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1년 뒤 그는 많이 참았다는 듯 미친 에너지를 뿜어내며 3만 5천 명 홈관중의 야유를 응원가로 바꾸어 버린다. 그 결정체는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였고 경기는 패배했지만, 넘치고도 남을 활약으로 프랑스의 한 해설자는 "박지성이 경기장에 몇 명이 있는 것 같다. 수비에 park, 미드필더에 park, 공격에 park"라는 찬사를 늘어놨다.

Sir Alex Ferguson 

잉글랜드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잉글랜드 국민이 이름 앞에 'Sir'를 붙이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전화가 박지성에게 걸려왔다. "우리는 너를 필요로 한다. 반니스텔루이도 맨체스터에 와서 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도 여기에 와서 잘할 것이다" 라며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을 알렸다.

대한민국 국민들과 기자들마저도 입단식 사진을 보고 "합성 아니냐?"며 믿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잉글랜드는 축구에 있어서 아시아인들의 미개척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005년 7월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름을 올렸고, 자신의 꿈과 동시에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의 시발점이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3번 박지성, 그가 지금껏 걸어온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축구 선수로서의 약점, 때로는 홈팬들의 야유, 크고작은 부상 등 쉴 새 없이 그를 괴롭히는 것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시련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축구라는 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즐겼다. 

무릎에 7개의 구멍이 난 무릎으로 미친듯이 뛰며 장학재단까지 설립하여, 실력이 있어도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이 겪었던 학연, 지연에 대한 폐단과 환경으로부터 어린 선수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하는 이 청년을 당신은 욕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6월 16일 포스팅한 박지성 자선경기, JYJ 팬미팅으로 전락한 국제적 망신 글에 올라온
아래의 댓글로 인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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