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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Variety

무한도전 나름가수다, 발언권 뺏긴 유재석과 불편한 진실 3가지

by 라이터스하이 2011. 12. 26.
 

또 어떤 패러디를 보여줄까? 기대를 모았던 무한도전 나름가수다의 첫 회가 방영되었다. 웃음도 깨알같앗지만 퀄리티와 나가수와의 싱크로율까지 잡은 무한도전의 연말 선물은 다음주의 본격적인 경연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조금 특이했던 것은 표면적으로 무한도전의 색깔을 강하게 가미시키기 보다는 나가수의 제작 스타일과 거의 흡사했다는 것이었다.


방대한 양의 자막과 배경, 두가지만으로도 나가수를 보는 것 같은 진행이었다. 단지 그것에 그치지않고 무한도전 나름가수다 특집은 언제나처럼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 준 방송이었다. 많은 가수들이 거쳐가며 때로는 감동을, 가끔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나가수에 대해서. 누가 뭐래도 2011년 한 해 핫한 플레이스의 중심에 있었던 이 프로그램을.

그 첫번째로는 길을 두고 박명수가 언급했던 "이렇게 히트곡이 많은데 왜 무시당하면서 여기있냐? 그냥 빠지고 노래 해 계속"라는 말이었다. 물론 웃자고 한 말이지만 나가수의 제작의도를 넘어 아이돌 일변도인 지금의 가요계와 싸우고있는 가수들의 현실이기도 했다. 다른장소, 다른 주제에서의 말이었다면 웃고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름가수다 돌림판에 넘치던 리쌍의 히트곡과 빠지라는 박명수의 말에 아무 말 못하고 눈을 내리깔던 길의 표정을 보니 마냥 웃지만은 못할 것이었다.

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지만 TV에 설 자리가 없어 공연 위주로 살아가던 가수들이 몇몇 나는 가수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소위 비주류나 한물 간 가수 취급을 받는 기성 가수들은 분명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이야 예능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지만, 이런 폐단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있을 부활의 김태원이 그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매니아층이라는 부동의 충성스러운 그림자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가요계의 흐름과 현실을 길의 표정 하나에 모두 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입맛이었다.

이어 길에게 빠지라고 한 박명수의 박번복 장면은 분명 나름가수다 특집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짧은 컷들의 연속으로 다이나믹한 편집이 주를 이뤘지만 박명수의 4연속 뽑기 장면은 깨알 웃음을 위해서라면 가위질을 했어도 충분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김태호로 대표되는 제작진은 잘라내지 않았다.

나가수에서 있었던 일, 또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은 분명 아니다. 룰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 나가수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가수에서 번복은 절대 안된다고 단언했던 박명수가 그런 장면을 연출했다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결과적으로 박명수가 4번의 바퀴를 돌렸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는 내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처음 선택된 곡을 하겠다'며 말이다.

따지고보면 우리가 나가수에 열광한 것은 곡도 곡이지만 가수들 덕분이었다. 자주 볼 수만은 없는 실력파 가수들의 A급 무대. 그 감동들의 향연을 매주 보여주었던 그들이 가장 주요했고 중요했다.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 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불러 진정성을 담을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깨닫게 해 준 장면이기도 했다.

가장 불편했던 장면을 꼽으라면 위 2장면보다 더 억울해 보였던 신사동 호랑이와 유재석의 편곡미팅이었다. 시종일관 신사동호랑이의 일방적인 의견에 수긍하며 진행자의 어떤 면목도 보여주지 못하고 벙어리가 되버린 유재석. 거기에 곡을 들려달라고 했지만 신사동호랑이는 무대의 연출과 느낌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이 장면 또한 불편한 나가수의 방향과 가요계의 불편한 진실이 그대로 담겨있다.

트렌드화 되버린 가요계의 흐름에 작곡자들은 아이돌과 가수들에게 비슷한 스타일의 곡을 일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 몰개성의 1차적인 원인이라 해도 될 것이다. 나름가수다 특집에서 유재석에게 멘트를 모조리 가져가며 신사동호랑이는 작곡자의 절대 권력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유재석도 힘들어하지만 "내가 오늘은 모든 걸 받아들이는데"라며 부드러움 위에 약간의 분노를 얹어 "멱살 잡을지도 몰라, 내가 지금 주먹이 근질근질 하거든"이라는 멘트를 날려준다. 나가수뿐만 아니라 지금 가요계에서 전문가들과 평론가들이 누누히 지적하는 문제가 이런 시스템이다. 반면 방송에서는, 특히 가요계 내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례적으로 유재석이 주먹이 근질하다는 표현으로 속을 다 시원하게 해주었다.

가수의 개성보다는 곡의 파급력과 무대의 연출력에 지나치게 매몰되가는 나가수와 아이돌 가수들, 더 이상 아이돌에게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유재석에게 개성이라 할 수 있는 진행과 멘트를 뺏으며 세뇌시키는 듯한 신사동호랑이의 울림은 더 이상 고전동화가 아닌, 우리 귀로 들어오는 인스턴트식 가요의 사자후와 같았다.

유재석에게 최고의 무기라 할 수 있는 진행과 말빨을 원천봉쇄시키며 김태호 PD는 무엇을 말해주고 싶은 것일까? 모르긴 모르겠지만 유재석이 1위, 또는 상위권에 오르는 결과를 얻는다면 더더욱 씁쓸할 수 있는 넋두리가 아닐까?

이 부분을 보고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지난 무한도전의 '프로젝트 런어웨이'였다. 많은 디자인들 중에서도 박명수의 기상천외한 죠스 의상이 선택을 받았고, 그 이유는 의뢰인의 개성에 부합한다는 원초적인 것이었다. 유재석과 신사동호랑이의 편곡미팅 장면에서 느낀 개성이라는 키워드와도 묘한 일관성을 지녔다.

언제나처럼 깨알같은 웃음과 그 속에 생각할 수 있는 보기들을 내포하고 있었던 무한도전 나름가수다였다. 그 대답이 주관식이라는 것이 역시나 무한도전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름가수다 특집 또한 많은 부분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곡보다 순서보다 중요한것은 가수 그 자체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수다 패러디를 하면서도 일관성과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는 무한도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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