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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Variety

'무한도전에 미안한 마음', 무한걸스에서 온 사과의 편지

by 라이터스하이 2012. 6. 3.


무한도전 팬들에게 사상 초유의 청천벽력 날벼락이 떨어졌다. 육두문자가 나온대도 이상스러울 게 없는 상황이다. MBC 에브리원(MBC every 1)에서 방영되던 '무한걸스'가 공중파, 그것도 주말 예능에서 '무한도전'의 옆집인 '일밤'에 전격 편성된 것이다. 평생 함께 갈 것만 같았던 무한도전과 시청자들 사이의 간격, 뿐만 아니라 무한걸스와 무한도전 멤버들의 관계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과격한 결정이 아닐 수가 없다. 파업 4개월여 만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 아직도 재방 5%의 시청률을 만들어 내고 있는 매니아들마저 한숨이 나올 법하다.


일각에서는 "무한걸스가 의외로 재미도 있고, 일요일 호우 시간대가 무한도전을 타겟으로 삼은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눈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은 인과응보다. 고무신도 거꾸로 신는 판국에 새 밥상 차리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거기에 무한걸스는 케이블 채널에서도 시청률 7%대를 넘나드는 예상외의 복병이다. 비록 공중파에서 5%의 시청률을 기록 중인 무한도전이지만, 이마저도 어쩔 수 없는 꾸준한 하락세를 달리고 있다. MBC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포맷의 두 프로그램 중에서 '말 안 듣고 시청률 낮은 예능은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는 결정적인 명분'도 생기는 셈이다. 넋놓고 바라보기엔 무한도전이 빈집털이를 당하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이런 대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이번 무한걸스의 공중파 입성 결정은 도덕적으로도 매우 찝찝한 사태다. 무한걸스에 있어서 유재석의 역할을 맡고있는, 실제로도 유재석과 절친인 송은이는 트위터로 "무겁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내색했다. 괜한 노파심 때문이 아니라 정말 미안해해야 하는 것이 맞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보자. [A라는 회사에서 B라는 본점과 C라는 하청업체가 있다. B는 A에 막대한 공헌을 하는 능력 있는 자회사다. 그런데 CEO가 바뀌더니 C라는 회사에게 B의 물건을 카피하도록 하더니, 다음에 들지 않는 B의 바로 옆 건물에 똑같은 방식으로 물건을 만드는, 타이틀도 대놓고 비슷한 자회사를 차린 것이다.] B라는 회사는 개개인 모두가 수퍼바이저를 자처하며 가족같은 마음으로 물건을 만들어왔는데, 이 얼마나 4가지 없는 상황인가? 작년 연말에 있었던 시상식에서 나가수에게 당한 수모는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물론 편성 초반 말도 많았던 남자의 자격과 1박 2일의 관계를 보면 긍정적인 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초반 비슷할 것 같았던 두 프로그램은 결정적으로 달랐다. 1박 2일이 게임 위주의 서바이벌에 가깝다면 남자의 자격은 스토리텔링에 가까웠다. 초반에 그 말 많았던 논란들도 결국 시간이 흐르고 두 프로그램 모두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주체와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반면 무한도전과 무한걸스는 오히려 정 반대, 막말로 무한도전을 100% 카피한 무한걸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별만 다를 뿐이니. 지금껏 무한걸스가 7%의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 그 또한 무한도전의 아류작이라는 점을 타이틀처럼 스스로 인정했고, 케이블이라는 마이너적인 특성까지 시너지로 작용해 희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한걸스를 똑같은 방송국인 MBC에서 하루 지난 다음 날 방영한다는 것은 '사실 상 무한도전을 버리겠다는 결정을 했다'라 볼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무한걸스도 마냥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상황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무한도전의 지금 상황이 부럽다고 느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케이블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무한걸스는 일요일 공중파로 옮기는 순간 '정글의 법칙', '남자의 자격'과 한바탕 틈새 전쟁을 치뤄야 한다. 정글의 법칙이 15.0%, 남자의 자격이 6.6%. 이 20% 남짓한 시청률을 무한걸스가 쉽사리 따낼 수 있을까? 분명 성공보다는 패망의 그림자가 더 가까워 보인다. 무한도전이 파업을 하기 전 시청률은 20%에 육박했다. 토요일 예능 본좌급 무한도전이 파업을 거친 후 10%씩을 나눠가질 것이라 예상했던 불후의 명곡과 스타킹은 지금 어떤가? 무한도전 없어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을까? 아니다. 4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시청률에 있어서 오히려 내림새다.


이렇듯 주말 예능에서 채널 돌리기를 기대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무한도전이 아직도 5%의 시청률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시청자들의 채널고정 정신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케이블에서 누릴 수 있었던 다고 과격한 언행이나 이슈메이킹도 제한을 받는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간다면 '멤버 대폭 교체'또한 수순이다. 무엇 하나도 승산이 크게 보이지 않는 무한걸스가 만약 공중파에서 시청률에 바닥을 찍는다면 어떨까? 공중파는 고사하고 케이블에서 다시 무한걸스를 만나볼 수나 있을까? 방송이 그렇게 쉽게 풀린다면 좋겠지만, 무한걸스는 가루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무한도전도 죽고 무한걸스도 죽는 자폭의 지름길, 몰살의 종지부가 되는 것이다. 


결국 가장 안타까운 이들은 이 모든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시청자다. 특히 '무도빠'라 불리는 유서깊은 형재자매들에게는 MBC에게 통탄의 한수를 얻어맞는 기분일거다. 얼마 전 무한도전' Yes or No'에서 유재석이 찾았던 마라도 자장면집이 불법 건축물로 적발돼 철거되었다. 무한도전에게는 추억의 장소가 철거된 데 이어 이번 무한걸스의 모양새 나쁜 빈집털이까지. 파도도 이런 파도가 없을 듯 하다. 아직까지 MBC가 '무한도전 해체 선고'에 도장을 찍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 '캄캄한 밤바다의 등대가 되어 무한도전이라는 작은 배를 지키고 있는 5% 남짓의 무도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은 영향력마저 움츠려든다면 무한도전의 미래도 그리 밝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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