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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Variety

무릎팍도사-형돈이와 대준이, 그들만의 무한도전

by 라이터스하이 2013. 3. 8.



무릎팍도사-형돈이와 대준이, 그들만의 무한도전

조피디가 처음 나왔을 때다. 필자도 아직은 30대 초반이라 아주 어릴 때 이야기다. 그의 노래는 독설 기본, 욕설은 서비스였다. 물론 그게 이유 없는 찌질거림이었다면 곧 잊혀지고 말았겠지만, 기성언론은 말 할 것도 없이 누구나 손가락질 하는 곳에 겨냥된 화살이었다. 그 때는 이미 밝은 이야기와 달콤한 비주얼로 소녀들을 구워 삶기 바빴던 아이돌이 장악해 버린 춘추전국시대. 이런 아이스크림 진열장 느낌과는 정 반대로 마치 에스프레소의 쓴 맛처럼 다크한 감성을 전해주었기 때문일까? 꽤나 긴 시간 조피디의 가사가 잊혀지지 않았던 이유였던 것 같다. 어린 나이의 나에게 각인된 그의 색깔은 적어도 그랬다.


데프콘 역시 조피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가시밭길을 걸었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이야기한 것처럼 나름의 영역과 실력, 인지도까지도 있었다. 명성만 먹고 사는 잔다르크라면 표현이 될런지는 모르겠다. 색깔이 있었으니까, 개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반해 돈 좀 만져보자라는 슬로건 아래에는 너무나도 힘들 수 밖에 없었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이 전에 음악다운 음악만 하다가 언제 시궁창에 떨어질 지 모르는 게 국내 가요시장이니까.





현직 깍두기가 형님이라 해도 손색없을 데프콘의 강렬한 비주얼만큼이나 힙합이란 이름으로 직진만 해댄 그의 이유는 뭐였을까? 궁금했다. 무릎팍도사-형돈이와 대준이를 보고 난 후에 모든 게 이해되고도 남았다. 간단했다. 그냥 흑형들의 음악이나 문화가 간지났다는 단 하나의 이유다. 힙합이 좋아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고, 군산의 클럽에 살다시피 했던, 힙합에 미치게 된 모든 이유가 거기에서 시작된 거라고. 아직까지 이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며 설레는 듯한 데프콘의 히스토리가 꽤 귀여웠다.


흑형들의 오리지날리티에 가까운 힙합을 하고 싶었던 대준이의 이야기를 무릎팍도사에서 듣고 있으니, 한 문장이 급격히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힙합에 가까울수록 돈과는 멀어진다'는 것이다. 꼭 힙합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예능 준비까지 철저히 해야하는 요즘 가수들이 제일 뼈저리게 느끼실거다. 흔히 흥행보증 수표라고 불리는 제작자나 아티스트들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표절시비가 걸리고, "곰탕집 코스프레냐?"라는 말까지 들으며 우려먹기의 의심까지 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돈의 맛이 불러온 암울한 이펙트가 아닐까?





임팩트 있는 비주얼과 코라콜라 같은 중독성을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비트를 찍어 날리고 이펙트를 입혀 트렌드라는 이름에 어떻게든 끼워 맞춰보려는 제작자들의 하루일과. 그것과는 187도 정도는 다를 데프콘의 걸어온 길이 너무 힘들었을 것만 같았다. 힙합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여자친구에게 오빠가 거지냐는 말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나를 믿고 노력만 하면 모든 게 잘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려도 격하게 흔들렸던 순간이었을 거다.남자로 살면서, 특히 뭔가를 창작해내야 하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가치관을 바꾸는 것큼 자존심에 스크레치 나는 일도 없을 거다. 


그런 큰 결심을 하고 케이블 예능에 뛰어든 데프콘, 원했던 아니던 그에게 예능은 먹고살기 위한 도전이었다. 만약 그에게> 정형돈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거기에서 STOP 버튼에 손가락을 집어넣고도 남지 않았을까? 정형돈 역시 무한도전에서 힘든 시간을 오래 겪었던 기억, 케이블 예능에서 데프콘을 만나 생긴 추억의 의리, 어느새 형돈이와 대준이는 연말 콘서트까지 마친 그럴듯한 그룹이 되어 있다. 음악에 대한 배신감을 뒤로 하고 형돈이와 대준이를 시작하는 데프콘에게는 2번째 기회, 생전 처음의 전성기다. 힘든 시기를 꾹 참고 이겨낸 정형돈, 그의 이해와 배려로 캐스팅 된 데프콘. '그들만의 무한도전' 이라는 이름하에 더블 캐스팅 된 형돈이와 대준이. 그 끝은 어디일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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