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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Drama

계획된 응사의 3가지 포텐 시나리오

by 라이터스하이 2013. 11. 29.


케이블에서 경이로운 10% 시청률을 뚫으며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공중파"를 지르고 있는 응사의 위엄. 이명한의 아이들은 이제 흥행보증수표가 된 걸까? 신원호나 나영석 모두가 잘나가는 가운데에서도 응사는 화룡점정의 꼴이다. 이제 응사는 케이블사상 유래 없이, 드라마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확률이 더욱 더 높아졌다. 3대 포털은 고사하고 복고패션 트렌드를 다시 불러올 정도니 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재미있는 이 응사의 포텐, 정말 어떻게 터질 수 있었던걸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그 시대를 되살려 놓은 미쟝센으로 대표되는 섬세함과 자료수집에 있지 않을까 싶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찍으며 1년동안 범인을 쫓아 다니면서 이러다가 내가 범인을 잡겠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만큼이나 엄청나 조사를 한 것이 드라마 속의 미쟝센에 충분히 녹아들었다. 




1994년을 그대로 옮겨놓은 치밀한 미쟝센

첫 번째로 감격과 쇼킹을 동시에 선사한 것은 응사 속 캐릭터들의 의상이었다. 그 브랜드들의 옷들을 어디서 구했는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소위 먹어주고 입고 다니면 좀 잘 나간다는 브랜드들을 주인공들에게 입혀 놓은 장면 하나하나가 추억에 잠기게 했고, 진부하지만 향수를 격하게 맡을 수 있게 했다. 정말 저 브랜드들을 구하는 것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을텐데, 신원호 PD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건 휴대기기의 증조할아버지격이라 할 수 있는 삐삐의 등장. 한 두번 쯤 보여주고 편집할만도 하지만, 최소 매회 1번 이상 등장해 삐삐의 희소성을 부여해 주는 센스까지 보여주는 응사의 저력이다. 카카오톡, 문자메세지, 메신져도 희박한 시절에 굳이 줄을 세우는 설정까지 재현하면서 그 시절의 애틋함을 장면에 담아내고 있다. 그뿐인가. 이에 마침표를 찍는데, 시대적 사건들 속에 주인공들을 참여시키며 몰입을 증폭시켜 준다. 삼천포와 사천의 이름전쟁, 삼풍백화점 등 대략의 날짜까지 맞춰 사건들을 배열하고 있다. 역사와 함께 가겠다는 건지, 잊지 말자는 뜻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단하다는 것만 인정하고 싶다.




수직아닌 수평적인 그들의 관계

포텐터진 응사의 두번째 시나리오는 바로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그들의 관계다. 하숙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어쩌면 그들의 수평적인 관계의 시작이다. 주인공이 한 두명이 아닌 이런 류의 드라마에서도 결국엔 비중이 나눠지기 마련이다. 물론 나정이와 쓰레기, 그리고 칠봉이가 묘한 삼각 관계, 어쩌면 그 이상을 시작하고는 있지만, 응사는 해태나 빙그레도 놓치지 않고 비중을 맞춰주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해태와 빙그레의 비중을 살려주기엔 윤진이 커플이 너무 빨리 완성된 것 같아 아쉽다. 쓰레기와 빙그레의 오묘한 관계는 아무래도 좀 불편하긴 하니 말이다.


수평적인 그들의 관계라는 건 그들이 친구라는 점이 아닌, 비중에 있어서 누구 하나 밀리지 않고 최소한의 밸런스는 잡고 간다는 점이다. 시시콜콜한 사랑이야기로 치부되지 않게 만드는 가장 완벽하기도 하고, 구성 자체가 디테일하고 튼튼하지 않으면 망하는 장치중에 하나기도 하다. 신원호 PD는 줄타기를 하듯 그 활금비율을 섞는 것 같다. 응사가 자칫 삼천포로 빠져 빙그레 하다가 쓰레기가 될 수 있는 방지 장치를 미리 만들어 놓았으니 최후의 반전을 늦게 꺼내더라도 시청자는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순수한 그들과 아날로그 세상

순진하지는 않지만, 순수한 그들로 지금보다 따듯한 세상을 표현한 신원호 PD의 세번째 시나리오다. 리얼리티만 살렸을 뿐인데 이런 결과만 나왔을리는 없다. 그 시절에도 분명 나쁜 세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돈 없고 배고프고 춥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을 추억하며 만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는 것이 응사의 따뜻한 온도가 아닐까 싶다. 누구 하나 의리를 깨지 않으며 친구 이상의 식구스러움을 몸소 재현해 주고 있는 응사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느리지만 그래서 더욱 애절할 수 있고 애틋할 수 있는 것이다. 과격하게 말하지만 더 진득한 우정을 갖고 있고,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짝사랑을 키우고 있다. 고백을 받아도 며칠동안 생각하고 말해야 되고, 그 말을 하는 순간마저도 서로에게 삐삐를 쳐서 몇시까지 어디서 나오라고 해야되고, 기다리다가 나오지 않아 지치면 그냥 가게 된다. 기억이 난다. 약속을 잡으면 최소 한시간은 기다렸던 것이 그 시절의 기억이다. 삐삐가 없었으면 그 이상을 기다렸을지 모르는 그 시절은 지금보다 분명 순수하고 느렸던걸로 기억된다. 그 데자뷰를 응사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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