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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Variety

아빠어디가, 모자이크가 필요한 민망했던 실험카메라

by 라이터스하이 2014. 3. 3.

 

 

새롭게 바뀐 아빠어디가, 몇주나 지났을까? 짧은 몇 주 동안 많은 곳을 여행다녔던 그들. 배운것도 많고 즐거운 것도 많았던 아빠와 아들들. 하지만 제작진의 생각은 조금 다른가보다. 16%였던 1월의 시청률은 3월 2일 닐슨이 집계한 9.0%로 떨어졌고, 헨리의 레펠하강 만큼이나 곤두박질 칠 기세다. 나른한 오후 2시의 기지개처럼은 아니더라도 전보다 루즈한 흐름이었던 아빠어디가. 그래서일까? 뭔가 더 보여줘야 한다는 모습이 성동일의 분장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실험카메라의 장면들은 편하게 볼 수가 없었다. 취지와 의도가 좋았다는 대의명분, 그 아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엔 불편한 구석들이었다. 특히 9살 윤후의 성동일 아저씨죠 하는 장면에선 이제 그만해라고 외치고 싶었다. 거기까지 가서 그만둘리 만무했지만, 이 어색한 콧수염의 아저씨는 그만 호통을 쳐 윤후의 묵념을 받아낸다. 3초가 걸리지 않았다. 윽박지른 성동일 앞에서 윤후가 고개 떨구기까지의 시간은.

 

이런 실험카메라가 다분이 쌍팔년도스럽고, 아빠어디가가 나름의 위기인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기를 이렇게도 죽여가며 빨대를 꽂아야하나,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재미를 위해 살을 내주고 뼈를 깍는 피해자가 바로 아이들의 우상이 되버렸다.

 

 

 

모자이크가 필요했던 실험카메라

 

아빠어디가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최고의 담보로 하는 관찰예능이다. 1박 2일처럼 배신의 컨셉도, K팝 스타의 경쟁구도도, 아빠어디가라는 간판에 채색될 떄 불편해진다. 그 순수함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지에 따라 호불호는 갈린다. 아빠와 손잡고 바다가 갈리는 예쁜 마을에 떠나, '아 우리도 아이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소파에 누워 배를 긁던 평범한 아빠의 각성이 아빠어디가의 순기능 아니었을까?

 

알면서도 모른 척 해주길 바라는 때 이른 산타 코스프레는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만연하다. 핫도그를 사먹다가 와사비 소스를 뿌린 느낌이다. 손발이 모자이크를 불렀다. 순수함을 끌어내는 건 그들의 몫이지만, 순수함을 활용한 트릭은 아빠어디가와 어울리지 않는다. 시청률은 번지점프 중이고, 나 다운게 도대체 뭔데라면 할말없는 시청자지만. 작금의 딜레마 탈옥을 위해 아이들을 희석제로 쓰는 건 그렇게 명쾌한 루트는 아니어 보인다는 거다.

 

 

 

순수함을 담보로 한 도박

 

아빠어디가의 탄생시즌. 아빠와 단 둘이 떠나는 여행. 집을 떠난 아이들의 표현세계, 완전히 다른 신세계에서의 성장. 이 3가지의 양념이 그들의 맛이었다. 그렇게 2번째 시즌, 3가지 중 2가지에 익숙해져버린 시청자들, 아직도 뽑아먹을 수 있는 건 역시 신세계에서의 성장이다. 내성적인 아이들을 위해서 물물교환으로 사람을 만나게 하고, 집안에만 머물러 모르던 세상을 보여주던 아빠어디가의 초심, 정답은 거기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시청자 역시 아빠어디가 안에있는 아빠와 아들이고, 그들이 재미있어야 시청자도 편하게 웃을 수 있다. 자극을 지극히 배제할 수 없는 주말예능, 포맷 자체가 아직도 매력적인 프로그램, 그러니까 본질이 중요한 아빠어디가의 시청률은 자극이 아닌 성장통에서 나온다. 순수함을 담보로 한 실험카메라는 아빠어디가에서 도박이 될 수 있다. 첫번째 시즌의 되새김질이 필요해 보이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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