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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Cinema

남자가 사랑할 때, 클리셰로 두 번 울린 황정민의 클래스

by 라이터스하이 2014. 3. 8.

남자가 사랑할 때, 극장을 나온 여자들이 그렇게 크리넥스를 뽑았다던 그 영화. 궁금했다. 혼자 보는 멜로물의 씁쓸함을 경험해 본 노이로제랄까. 이 습관병을 고쳐줄 수 있었던 건 결국 황정민이다.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었다던, "드루와 드루와!"를 유행어로 만든 서민 비주얼의 배우 말이다. 일단 봐야하지 않을까? 2시간 정도 후, 느낀 점은 역시 이 번에도 숟가락을 제대로 얹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거...설마.. 클리셰?

너는 내 운명이란 영화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남자가 사랑할 때'란 영화, 어디서 꽤 많이 본 듯한 설정이다. 박중훈의 '내 깡패같은 애인'이나 임창정의 멜로물들, 설정이나 이야기들이 예전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100% 맞다고 할수도 없고, 50% 이하라 할 수도 없는 클리셰, 급사빠로 시작해 '사랑에 목숨 거는 남자의 짠한 사랑'이야기였다. 느린 전개와 달리 사랑에 빠지는 건 또 엄청 순식간인 이 남자의 무식하지만 로맨틱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역시 초반에 걱정이 많이 됐다. 지금까지 봐오던 결말을 또 봐야하는건가 하는 불안감. 까놓고 말해 '뻔한 결말'이라면 오늘 '좋은 리뷰' 나오긴 글렀구나 했으니까.




황정민이라 달랐던 '사골'

'못 멋어도 고'를 외치듯, 제작진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황정민은 클리셰의 밥상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이제 밥상에 포크까지 올려놓은 듯 했다. 무식하고 배운 것 없는 일수쟁이 한태일. 사랑으로 인생을 바꾼 우리 형님들의 이야기는, 돈 많고 싸가지 없는 백마탄 꽃미남 만큼이나 우려먹은 곰탕일거다. 황정민의 연기는 지금까지 먹고 먹었던 곰탕의 재발견을 몸소 실현했다. '내가 원조라고' 이렇게 말하긴 힘들겠지만, 다른 집을 망하게 할 정도의 감칠맛은 충분했다.




임창정의 멜로 VS 황정민의 멜로

황정민은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눈물을 짜냈다. '임창정의 멜로물과 황정민의 멜로'란 화두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무게감이다. 임창정의 멜로는 분명 애틋하고 슬프다. 캐릭터 역시 사랑스럽게 풀어낸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라면 가볍고 흐릿해 보이는 임창정의 멜로가 더 클지도 모른다. 영화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임창정의 캐릭터는 애틋하고 애틋해진다. 너무 불쌍하다. 불쌍한 건 여기 숟가락 잘 얹으시는 분도 마찬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황정민에겐 완급조절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황정민은 영화 초반 그리 사랑스러운 인물이 아니다. 도전적인 비주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쉽게 사랑할 수는 없는 캐릭터임이 분명했다. 점점 갈수록 사랑스러워지는, 그래서 후반부엔 한 방을 터트리는 그런 캐릭터다. 영화 내도록 고생하는 성룡의 영화와, 초반엔 모르지만 마지막엔 한 방이 있는 이연걸의 액션영화를 비교하면 설명이 될런지 모르겠다. 임창정이 성룡이라면 황정민은 이연걸에 가깝다 느꼈다.




마지막 독백으로 두 번 울린 황정민의 클래스

남자가 사랑할때란 영화의 최대 반전은 황정민의 시한부 판정이다. 예쁘고 착한 여자와 치킨집을 차려 주문 '들어와 들어와' 하면서 알콩달콩 살고 싶었던 그는 꿈을 싸그리 뺏긴다. 그녀를 알기에 떠나기로 한 한태일은 웬걸? 생각보다 빠른 타이밍에 죽음을 맞이한다. 러닝타임이 아직 조금 남았는데 왜 벌써 죽었을까 싶었던 순간, 회심의 회상신(scene)은 새벽 2시의 하품아닌 감성의 눈물을 떨어지게 만들었다. 라면을 먹으며 아버지에게 호정을 부탁한다는 그의 연기는 소름끼칠 시간도 주지 않고 눈물샘을 흔들어놨다.


황정민의 멜로는 분명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하지만 모든 걸 다 받아줄 것 같은 남자의 바보같은 사랑이라면, 결국 황정민이다. 임창정의 멜로물에 '내가 너 사귄다'가 있다면, 남자가 사랑할 때의 황정민에겐 '내가 너 다가오게 한다'가 있다. 그래서 더 질퍽거리고 떡 하나 더 주고싶은 애틋함이 있다. 너는 내 운명 때와 달리 이제는 한 여자에 올인하는 이런 사랑 이야기도 올드한 감성코드의 영화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아쉽다. 




멜로보단 로맨틱 코미디로 가는 추세고, 로맨틱 코미디보단 비주얼 '갑'과 함께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더 먹히고, 여자들이 좋아 죽는다. 이런 환상의 시나리오판 위에서, 클래시컬한 클리셰로 눈물을 쏙 빼놓은 황정민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닳고 닳은 클리셰를 택한 이 영화는 분명 100%의 밥상은 아니다. 고급 한식집은 아닌, 차라리 남들 다와서 먹는 뷔페라 봐야겠다. 거기서도 역시 맛있게 먹으며 클리셰도 아름답게 장식한 그의 내공, 이젠 숟가락을 밥상 중간에 얹어도 될만큼의 사랑스러운 한태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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