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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Cinema

찌라시, '권력과 부의 전쟁' 대부와 닮았다

by 라이터스하이 2014. 3. 21.



대부와 찌라시의 감성적이고 현실적인 커넥션을 설명하기 전,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떠오른 영화가 노리개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야겠다. 마동석 홀로 고군분투한 이 영화에서 연예계 뒷마당의 추악한 이야기를 미리보기 해줬다. 찌라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조금 더 높은 선들에 있는 권력자들의 이야기까지 1+1으로 닮고있다. 연예계에서 잘나가기 시작한 여자 연예인의 죽음과, 정지인 사이의 연관성은 과연 어떤 것일까하는 호기심으로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갔다. 엔딩 크래딧을 쳐다보고 있자니 필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영화는 노리개와 부당거래뿐만이 아니었다. 이 모든 추악한 히스토리가 오히려 대부와 닮아있었다.




권력의 상징, 조직력과 재력

대기업과 국회위원과의 커넥션, 이 영화의 제목인 찌라시의 근원이다. 정치적 이점을 챙기기 위해 이들은 한 국회위원을 타겟으로 삶고, 팩트가 명백하지 않은 소문으로 그를 구워 삶는다. 무심코 던진 돌에 결국 개구리는 맞아죽었다. 온갖 재력과 조직력을 동원해 스스로의 밥그릇을 지켜나갔던 대부와 너무도 닮았다. 기득권이라는 수식어로 대표되는 그들만의 세상은 약자에겐 오르지 못할 산이자, 알아도 모른 척 해야할 부의 집안이다.


뜬소문인줄로만 알았던 찌라시의 근원은 뭐였을까? 찾아서 따라서 발걸음을 옮겨가자 결국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 권력이라는 놈이 기다리고 있었다. 찌라시는 지하 언론으로 표현되고 잇었지만,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는 결론, 이 영화가 밝힌 찌라시의 진상이란 이것이었다.




1%에겐 찝찝한 꼬리, 99%에겐 삶의 고리

대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해서도 분명 기억할 것이다.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조건을 제시하고 닥치게 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디든 다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찌라시의 배후인 권력자들은 두말 할 것도 없는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2014년이라기엔 믿기 힘든 방식으로 그들은 자기들에게 귀찮은 것들을 차애 태우고, 협박하고, 마지막 주먹 한 방을 상대의 얼굴에 불태운다.


이것은 찌라시의 성격과도 닮아있다. 그들에겐 죽은 연예인 미진과 그의 매니저는 찝찝한 꼬리일 수 밖에 없다.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조용하게 살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다시 붙잡아 조용하게 살라며 발길질을 한다. 상위 1%라 불러도 좋을 그들의 압력과, 99%에겐 감당하지 못할 권력세계.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의 구조와 싱크로된다.




팩션이라 슬픈 찌라시의 여운

그래서 더욱 픽션이라지만 현실적이었다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찌라시가 정말 찌라시인지, 눈앞에서 보고도 확신할 수 없는 게 요즘이긴 하니까. 필요 이상의 정보에 뇌가 쥐날 지경이니까. SNS의 쓰나미 세상속에 살고 있으니까.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잠깐 본 이야기들이 몇 개월 후 수면위로 팩드란 옷을 입고 나타나는 걸 보면, 그런 경험이 있는 걸 보면 마냥 픽션이라 부르기엔 또 어려운 영화다.


언론조차도 평향되어 쉽게 믿지 못하는 2014년, 물타기와 떡밥이라는 정치적인 어휘들마저 수면위로 떠오를 정도의 휘둘림의 세상에 살고있는 지금. 찌라시의 개봉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타이밍이란 게 분명하다. 누군가가 집 앞에 찌라시를 두고 간 일도 없는데, 인터넷 메일로 비밀번호가 걸린 찌라시를 받아본 적도 없는데, 이 찌라시를 기정사실화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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