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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Cinema

10분, 이용승 감독표 '당신의 현실은 안녕하십니까?'

by 라이터스하이 2014. 7. 24.



볼까 말까. 몹시도 망설였던 영화 10분. 포스터만 봐도 최근 독입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현실적 소재, 그런 영화로 보였다. 월급쟁이로 살고 있는 역시 같은 현실의 나로써는 안봐도 비디오란 느낌이 엄습했다. 그래서 망설여졌다. 회식문화부터 줄타기까지. 클리셰가 다분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보고 또 봐도 보게되는 다른 영화와는 느낌이 달랐다. 포스터만 봐도 무거웠다. 매일 출근해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 사는 인생의 축소판을 영화로 또 봐야한다니 말이다.


이 영화를 결국 클릭할 수 밖에 없었던 계기는 결국 적당한 킬링타임용 무비가 없어서였다. '에이 얼마나 잘 만들었나 한번 보기나 하자." 그 이상도 이하고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운도 없다. 그 많은 영화들 중에 10분을 킬링타임용으로 선택했다는 건.




뿌리깊은 공감대, 논픽션 돌직구의 향연


그러면서도 이 리뷰를 쓰고 있다는건 참 아이러니하다. 엔딩 크래딧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니까. 에스프레소를 연속 3잔은 마신 것 같은, 이 영화의 최고 매력은 쓰디쓴 공감대에 있다. 쓰라린 내 하루, 긴장감 넘치는 직장인들의 생활, 그리고 파란만장한 라인타기와 직장내 정치까지. 그 모든걸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인턴이라는 사회 초년생의 시각으로 처참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10분. 정말 개같이 일하는 우리의 주인공은 영화속 파워블로거의 농땡이와는 퀄리티가 다른 중노동을 회사에 선사한다.


"내가 니 시다바리다"를 자처하며 복사와 철야근무 도우미, 이 모든 걸 겪고도 싫은소리 하나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인생은 하나 나아진 게 없다. 이용당하고 모함당한다. 이용승 감독은 직장 내에서 행해지는 뿌리깊은 싸구려 관행과 썩은 부조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인데도 영화로 보니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치 지구를 떠나야 비로소 지구를 볼 수 있다는 명언처럼, 내 오늘 하루는 혹시 저렇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다.




당신의 현실은 안녕하십니까?


그런데도 이용승 감독의 시각은 객관적이고 냉철했다. 인턴은 자신의 회사생활에 대해서 뒷담화도 하지 않으며 묵묵히 버티고 버텨낸다. 만약 주인공이 입싸고 상사에게 비비기나 좋아하는, 그런 저니맨 캐릭터였다면? 이런 공감대는 절대 이끌어낼 수 없었을거다. 직장 내에서 이런 모든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는, 간디와 같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보는 사람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툭'하고 던져댄다.


이용승 감독은 어떤 강요도, 답도 내리지 않는다. 소지섭 주연의 영화인 <회사원>처럼 회사를 '초'박살내는 카타르시스도 없다. 단지 뭔가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역시 따지고 보면 그건 이용승 감독이 묻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묻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내 의식 속에는 항상 '이것이 올바른 현실인가' 하는 물음이 있으니, 이런 질문도 하게 되는 것일테니까. 




최후의 5분, 21세기 최대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 '10분'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용승 감독의 표현방식에서 달콤한 인생의 명언이 떠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지를 보고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저기 움직이는 것은 바랍입니까, 나무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고 말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나무도 아니다. 단지 니 마음 뿐이다."




이용승 감독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현실만 적당히 비췄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5분의 롱테이크는 무척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주인공과 함께 판단을 내려야한다는 압박감이 목 밑까지 '톡'하고 차올랐다. 그리고 내일 역시 출근하기 싫어하는 내 모습을 한번 훑어봤다. 이용승 감독은 나를 스트레스 받게하고, 나에게 현실의 벽을 또 한번 실감시켰으며, 날짜 기약없는 회식조차 벌써부터 걱정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쁜 영화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걸 알기에.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걸 제대로 찌르는 영화이기에. 


"오늘 아침, 당신의 현실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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