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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Cinema

제보자, 건재한 황우석 : 사기꾼들의 그라운드

by 라이터스하이 2014. 11. 3.


영화 포스터만 봐도 뭔가 엄청 까발릴것 같이 생긴 영화, 제보자는 포스터의 포스 만큼은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10월 27일 기준, 누적관객 170만을 돌파하긴 했지만, 객관적인 잣대일 뿐, 감상 후 주관적 견해로 '조금 더 관객이 더 들어갔어야 하지 않나' 싶은 욕심이다. 박해일, 그리고 유연석이면 '300만'은 해주길 바란 마음이 컸다. 제보자는 2005년 대한민국을 들쑤셨던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을 다루고 있다. 줄기세포의 주인공이다. 


1999년 젖소 영롱이를 체세포 복제로 만들었다고 발표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황우석. <사이언스>지에 배아줄기세포를 발표하면서 세계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여졌고, 세계 최초라면 사족을 못 쓰는 대한민국에서 영응 대접을 받게 된다. 향후 이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그는 언론에서 확인없이 쓴 사실이라며 오히려 화를 낸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처럼 가벼워진 언론

가장 눈에 띄는 건 개봉시기. 뒷북일 수 있다. 왜 10년 가까이 된 이야기를 들고 나왔나? 묻는 관객들도 없지않을 것이다. 명량, 해적처럼 세월호 타이밍에 맞춰 적절히 관객수를 채울수도 있었을텐데. 그래서 더 반대로 생각하게 만든다. 극중 사건보다 더 시기적 시사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 이유는 뭘까? 주관적인 생각을 써내려가 본다. 이 영화는 사실보다 진실에 포커스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론이라는 주인공과, 팬덤이라는 조연이 있다.


제보자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사기극도 아닌, 논문조작도 아닌, 대중들의 촛불시위였다. 황우석을 건드리지 말라며 촛불을 들고 마스크를 쓰고 나온 그들은 스릴러 영화에 갑자기 튀어나온 좀비들과 같다. 소름이 돋는다. 언론이 만든 팬덤문화의 상징, 2014년 우리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퍼진 그 뉘앙스의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니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여론과 언론이 잘 못 만나면? 사이비 종교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습니다' 를 보여주는 모범답안이었다.




아직 건재한 황우석

[한겨레] [사람매거진 나·들] 나들의 초상 황우석, 그 뒤 8년

지난 2월 14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하 수암연구원)에 도착했을 때, 세련된 외관이 주변의 낡고 허름한 연립주택과 대비되면서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논문조작으로 낙마한 황우석 박사가 적치부심 재기를 노리며 코오테·메머드 등의 복제 실험을 한다고 알려진 것이다. 건물은 웅장했고, 내부는 적막했다. 연구원들보다 개가 더 자주 눈에 띄었다. 건물 앞마당엔 구조견들이, 2층 로비에는 애완견들이 뛰놀고 있었다. 대외홍보를 담당하는 황인성(30) 연구원은 "모두 복제개"라고 소개했다. 2010년 2월에 합류한 그는 "동물 복제 연구를 여기만큼 일상적으로 하는 곳이 흔지 않다"며 "이종 장기이식, 동물 복제 연구가 흥미롭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황우석은 아직도 재기를 노리며 복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아직도 그의 팬던은 황우석만큼이나 건재하고, 제보자의 개봉을 욕하며 별점테러 움직임까지 보였다고 한다. 마약을 한 뒤 물타기를 이용해 스리슬쩍 무임승차하는 연예인, 군비리를 밥 먹듯 저지르는 국회의 그들, 그리고 팬덤과 언론을 이용한 사기꾼의 컴백까지. 이 사회가 도대체 어디까지 붉게 물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가 아닐까? 뻔한 시나리오에 뻔뻔한 면상을 다시 들이미는 클리셰를 보자니 막장드라마 그 이상을 보는 불편함이다.




사기꾼이 살기 좋은 그라운드

황우석의 1라운드를 보았을 때에는,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다시 시작했다는 그의 2라운드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에게 웃음이라도 주었던 허경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의 행동이나 논리들이 사실이 아닌것을 알면서도 그저 재밌다는 이유, 그 하나로 시청률의 옷을입고 케이블에서 들썩거리던 그. 초등학생 아이가 보아도 우스꽝스러운 그런 인물들의 신격화는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의지할만한 누군가가 필요한가를 대변해 주는것만 같다.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아닌 길인것을 알면서 가야하는 어린 고등학생의 모습을 보면,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우리는 공짜폰이 아니면서도 공짜폰이라고 적어놓는 간판들을 보며, 뭐 사라고 전화한것 아니라면서 마지막에는 결제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으며 살고 있다. 이 마저도 이젠 일상이 되버렸지만, 그들 역시 아직도 먹히기 때문에 그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팬덤과 언론이 만나면 가을 단풍이 물들어가듯 의지 약한 여론은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것이 지속되면 이데올로기가 된다. 황우석의 제보자가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는 바로 '제2의 황우석이 살기좋은 지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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