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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2014 · Jeju

제주도여행 - #6. 김영갑갤러리-따라비오름-서연의집-쇠소깍-서귀다원-천지연폭포-새연교

by 라이터스하이 2015. 1. 11.





새벽 6시, 그 캄캄한 시간에 성산일출봉의 일출을 보겠다고 일어났다. 일출을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여기라면 뭔가 다를 것 같았다. 그 기대감으로 6시에 알람을 맞췄다. 거짓말같이 일어났고 1시간 정도 채비를 하고 일명 광치기 해변이라는 곳으로 떠났다. 이 곳은 성산의 일출뿐만 아니라, 선상을 멀리서 바라보고 야경을 찍기도 한다는 사실을 가기 전에 알았다. 도착해보니 일출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 꽤 많다. 20-30명 정도가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어 해가 솟아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 날 해는 볼 수 없었다. 7시 40분이 넘도록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있었다. 찬바람과 바다의 파도가 얼른 다음 코스로 가라고 보채는 것 같았다. 이 날 해를 볼 수 있었던 건 9시에 넘어서였다. 아쉬운 마음에 주위의 배경을 조금 담다가 광치기 해변을 나왔다. 광치기 해변 바로 옆에는 개인 소유의 유채꽃 단지가 있다. 커플 사진을 찍기에 딱 좋아 보인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코스정복의 시작이다. 그 첫 번째 장소는 김영갑갤러리. 갤러리나 미술관이라면 치를 떨던 내가 달라졌다. 글쟁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부터 조금 시각이나 시야가 달라진 기분이다. 네이게이션은 빠른길을 안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나는 해안도로로 차 머리를 돌렸다. 오전에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고 싶었다. 역시 차 한대도 없이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달리는 해안도로는 즐겁다. 



차가움과 상쾌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바닷바람, 지나가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사는 모습, 오징어를 말리고 부표를 정리해 둔 마을을 보는 것이 즐겁다. 내가 여행간 곳의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는 건 나에게 행복이다. 그 이유때문에 갤러리로 가는 길에도 나는 차를 10번 가까이 세웠다. 부끄러운듯 나오지 않던 해가 이 때 슬슬 떠오르기 시작했다.



김영갑갤러리는 찾기 쉽지만, 한 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주위에 공사로 인해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지나쳐버린 나는 다시 차를 돌려 돌아왔다. 이 주위에는 유턴할 수 있는 곳이 많지않다. 그러니 도착 300미터 정도 전부터 감속을 하며 매의 눈으로 입구를 주시하면 좋다.



입장료는 2,000원. 입장료를 내면 티켓대신 사진 한장을 주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돌아오면 버려지는 티켓보다 사진 한장의 무게가 조금 더 무거웠다. 김영갑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의 사진을 본적도 없다. 애초에 여기 들렀던 이유는 창작하는 사람의 기분과 마음을 조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글도 일도 잘 풀리지 않는 시기에 힘을 받고 싶어서였다. 



김영갑은 루게릭병을 앓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제주도의 사진작가라고 한다. 없어질 위기의 이곳을 제주도민들의 협심으로 인해 지켜냈다고 한다. 나와 관광객들은 제주도민들의 힘으로 이 곳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도 뭉클했지만, 갤러리 안의 김영갑이 쓴 글들은 내 마음을 수시로 울컥하게 만들었다.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의 일과, 그리고 그것을 견디며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 죽음앞에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는 그의 메세지. 김영갑의 살아생전 목소리가 담긴 글귀를 보고 난 뒤, 그의 사진들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김영갑갤러리에 들르려는 사람이 있다면, 사진을 보기 전에 그의 메세지가 담긴 액자부터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러면 사진 속에 그가 어떤 기분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어떤 성향의 사진을 좋아했는지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쓰는 게 너무 힘이 들 때, 내면을 꺼낼수록 세상과 멀어지는 기분이 들 때, 만약 창작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갤러리가 힘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도에 다시 간다면 세손가락안에 들러봐야 할 곳이 이곳이다. 




무거웠던 마음이 김영갑갤러리를 다녀온 후로 조금 가라앉았다. 다음으로 시원한 사람이 맞고 싶어 간 곳은 따라비오름. 해는 중천에 떴지만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차에서 조끼 하나만 입고 내리려다가 차가운 바람에 따귀를 맞고 얼른 무스탕으로 갈아입었다. 4명의 커플들이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넣고 오징어 같은 것을 하고 있다. 흠...돌아가야겠군. 끼어준다고 해도 하기 싫지만 방해하기는 더 싫었다. 너무 해맑게 웃고있는 여자들, 그리고 덩달아 입이 귀에 걸린 그들을 조심스레 비켜가며 셔터를 눌렀다. 중국인도 없고, 소나기도 없고, 끝 없이 펼쳐진 평야가 시원하다. 여유와 고요함을 맛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따라비오름, 나쁘지 않다.




건축학개론의 촬영지로 유명한 서연의 집. 제주도 여행 중에서 제일 짧게 눌러보고 나왔던 곳이다. 안을 가득메운 사람들 때문에 들어가서 차 한잔 해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맞은 편의 아름다운 바다는 담을 수 있었으니 만족했다. 제주도를 다녀와 친구에게 바다 사진들을 몇 장 보내줬는데, 서연의 집 앞 바다가 제일 예쁘다고 했다. 감성적이고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라면 이 곳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듯 싶다. 다만, 주말을 피해 평일날 둘러볼 수 있다면 최고의 뷰와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 듯 하다. 돌과 길, 반사된 태양의 은빛바다. 이 3가지만으로도 최고의 뷰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다.

시계는 2시가 다 되어가고, 그러고 보니 아직 공복이다. 아침도 먹지 모하고 코스정복한다고 설친 탓이다. 서연의 집 주차장 맞은 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물었다.

"식사 되나요?"

"네"



회집이었는데 물회부터 식사류의 메뉴도 판매하고 있었다. 우럭 매운탕을 주문했다. 가격은 9천원인데 구성은 만오천원이다. 서울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양과 질이다. 배터리 완급조절 실패로 인해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쉽다. 우럭 두마리와 반찬 6-7종류가 나오는데, 아주 알차다. 인심도 좋고 맛도 좋은 그런 식당이었다. 혼자 갔는데도 인상쓰시지 않고 친절하게 받아주셨다. 생각보다 배터리가 빠르게 소모되는 바람에 둘째날부터 충전 품앗이를 해야했다. 식당에 들를 때 마다 충전기를 갖고 들어가 구석에 꽂아두고 밥을 먹었다. 아마 저 배터리가 병행수입이었지 아마.




친구가 '소깍쇠'라로 잘못 알고 있었던 '쇠소깍'이 다음 목적지. 제주 여행 중에서 가장 많은 중국인들을 만났던 곳이다. 바다 바닥이 보이는 카약을 탈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가봤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곳 역시 그리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고 한다. 홍보가 잘 되어서 요즘 사람이 많다는 현지주민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커플도 많고 중국인도 많았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물 색깔이 아주 예쁘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여기 물이 바닷물인가 민물인가에 대한 실랑이가 많았다. 아무렴 어떤가, 이렇게 예쁜데 말이다. 시원하고 울창한 곳이라 답답함을 풀기에도 제격인 듯 싶다. 주차장에 비해 차들이 너무 많다는 것, 장소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만 감안한다면 좋은 관광지다.





시원한 쇠소깍을 등지고 서귀다윈으로 가면서 나는 두 가지 선물을 동시에 받았다. 길가에 늘어선 노란 열매들의 향연, 그리고 작고 여유로운 사찰에 들러 찍은 사진이다. 시종일관 마음에 드는 길로 가지 않았던 네이게이션이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색감도 좋은 수십만개의 열매, 달려 있으면서도 하나같이 모양은 다 달랐던 잘생긴 그것들. 그것들은 월화사라는 절 앞에서 레드카펫처럼 깔려있었다. 시동을 걸어놓고 사진을 찍다가, 나중에는 시동을 끈 뒤 월화사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원래 없던 코스의 발견은 언제나 기분좋은 변수다.









쭉쭉 뻗은 도로를 다시 달리고 달려 서귀다원으로 갔다. 오설록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개미지옥일 것이 뻔했다. 물론 3일차에 오설록을 들르긴 했다. 역시나 다를까, 월요일임에도 엄청난 인파를 자랑하고 있었다. 바람은 다시 조금 더 차가워진 4시쯤이었을 것 같다. 녹차밭은 처음이었는데, 서귀다윈은 아주 장관이었다. 기억에 꽤 오래 남을만한 제주도의 관광지 중 하나다. 




주차 후 내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일을 하고 계셨다. 개인소유라는 것을 난 몰랐다. 일하시는 분인가 싶어 사진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니 찍어도 된다고 하시면서 작가들이 찍는 포인트까지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차도 한잔 내주셨다. 이 날, 이 시간에, 서귀다원에 여행객은 나밖에 없었다. 녹차도시 위의 황제라도 된 기분으로 유기농 녹차 한잔을 선물받았다. 그리고 절인 귤도 내주셨다. 녹차를 하나 안 살수 없었다. 상급 하나, 중급 하나를 샀다. 할머니와 마주 앉아 30-40분 이야기꽃을 피웠고, 더 늦으면 녹차를 역광으로 밖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2일차의 마지막 코스는 천지연 폭포와 새연교다. 삼각대를 준비해 가지 않았기 떄문에 서귀다윈을 나와 엑셀을 더 세게 밟아야 했다. 야경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것 같아 망설였지만, 제주도의 대표 관광지기도 했고, 그래도 이 시간이면 사람이 적겠디 싶어 천지연으로 발길을 옮긴 것이었다. 그런데 뒤통수를 맞았다. 해가 지는 시간에도 천지연 폭포는 중국인들 천지였다. 한국 사람들 비율이 이렇게 적어보였던 곳이 없을 정도다. 지나가면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이 한국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중국말을 엄청나게 하는데 혀를 내둘렀다. 인파로 사진찍는 게 쉽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비집고 들어가 몇 장을 빠르게 찍고 나왔다. 






나는 다리를 좋아한다. 다리와 같이 있는 바다라면 더 좋아한다. 다리와 바다와 조명이 있는 곳이면 더욱 좋아한다. 다리 야경을 좋아하는 나에겐 천지연 폭포보다 새연과 야경이 더 끌렸을지 모르겠다. 새연교는 기대에 보답했고, 배터리는 나에게 실망을 다시 안겨줬다. 빨간 불이 수시로 들어오는데 마음놓고 셔터질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여행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배터리 때문에 꽤 심장이 쫄깃했던 제주도 여행이다. 이번 삿포로 여행을 떠날 때에는 보조 배터리를 꼭 구매해야겠다.


새연교 앞에 펼쳐진 바다를 찍고 새연교로 올라가는데 유럽인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배낭과 카메라를 들고 서있었다. 나는 지나가며

"하이"

"하이"

"나이스 카메라"

"땡큐"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외국인이 반가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언어의 장벽으로 더는 엄두를 못내고 가던 길을 다시 간다. 새연교로 올라와 다시 몇 장을 찍었다. 위에서 내려보는 전경도 나쁘지 않았다. 새연교의 사이즈나 퍼포먼스가 최고라기 보단 주위 배경과 바닷가의 노을이 예술이었다. 제주도는 전반적으로 그런 장점이 있었다.  







정말 길고 힘들었던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고 호텔로 왔다. 이틀 째 묵었던 호텔 빠레브. 이 곳 역시 가성비가 좋았다. 타 1급 호텔보다 전체적인 규모는 작을지 모르겠지만, 내구성이나 비품 물품은 아주 섬세하다. 제주경기장이 보이는 뷰, 비즈니스 호텔같은 분위기, 조명도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은 15,000원하는 조식이 조금 입에 맞지 않았다. 요리보다는 간단한 조리로 가능한 메뉴들이 많았다. 뷔페식이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아메리카노는 나쁘지 않았다. 




호텔에 짐을 풀었고, 다시 나가기 위해서 배터리를 충전했다. 그런데 정확하게 7시 40분,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7-8개 코스를 하루에 다 돌다보니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다시 일어났을땐 새벽 4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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