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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Variety

라스 초토화, 눈물로 웃긴 박철민의 반전

by 라이터스하이 2012. 1. 19.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목포는 항구다>에서 나온 이 애드립 하나로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킨 박철민. 어쩌면 감독에 따라, 또는 영화에 따라 가차없이 잘려나갔을지 모를 저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비교할 대상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 분명 여태껏 보지 못한 신선한 캐릭터라 결론내렸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이 후 봇물 터지듯 드라마와 스크린을 오가던 박철민은 이제 뿌리깊은 호감형 배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주일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박철민'이 '라스'에 나온다는 예고편을 보고 난 뒤에 말이죠. <넘버3>에서 강한 인상을 주었던 안석환, 한상진과 함께 출연한 박철민은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로 기대감을 채워줍니다. 김구라가 "박철미니"라고 소개를 하자 "구라씨가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라고 하더니 "43년동안 아껴왔던 어금니 한 번 빠져볼래요?"라며 깨알같은 애드립을 선사하며 제대로 큰 웃음을 빵빵 터트려 줍니다.

그 짧은 순간에 나이를 물어 웃음 폭탄을 제대로 터트려 버렸는데요. 확실히 디테일이 강한 배우구나 하는 느낌을 초반부터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시종일관 박철민은 라스에서 깨알같은 예능감으로 1회분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의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버라이어티를 만들어 줬습니다.

힘들었던 무명시절에 버스를 탔는데 차비가 없어 능청스럽게 연기 아닌 연기를하며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사연, 백수시절 할 일이 없어 삐삐를 다각도로 보았다던 이야기. 자칫 일요일 교회의 예배 분위기로 침체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박철민의 디테일을 만나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양반은 예능으로 먹고 살아도 되겠다"싶은 생각까지 들더군요. 디테일을 강하게 살려주는 배우라 그런지,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라스 MC들의 줏어먹기나 포장하기도 박철민이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전통의 강팀이 점유율을 뺏긴 모양 같았으니까요.

구구절절 맛깔스러운 박철민의 토크에도 가슴 절절했던 장면이 있었는데요. 바로 무명시절 부인에게 4천원을 받아 만화방에 가서 배가 고파도 먹고싶었던 자장면을 먹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장면을 시켜먹으면 만화책 10권을 포기해야 했다면서 앞사람이 남기고 간 자장면을 먹었다던 박철민은 침까지 삼키며 실감나게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마냥 웃을 수 없었던 반전의 감정이 박철민의 다음 한마디에 전해졌는데요. 

"먹고 나니 맛있는데..슬픈 맛"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정에 복받쳤는지 박철민은 곧 눈물을 보였습니다. 지켜보던 김구라가 "어! 울려 그래요?"라고 하자 "아 그게 아니라..그때 정말 안 먹었어야 되는데"라며 스튜디오를 발칵 뒤집어 버렸습니다.

정말 비참한 무명시절의 페이소스에 빠져 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타이밍인데 박철민의 표정과 말투에 자꾸 웃음이 나와 더 참을 수가 없더군요. 마치 연말 시상식 개그맨들의 수상소감을 보는 것 같았다랄까요? 이야기를 마친 뒤 "속이 후련하시죠?"라는 질문에는 "답답한데요 지금도"라는 반전의 대답으로 김구라의 직구에 홈런을 날리는 예능적인 마무리까지. 제대로 웃음을 장착한 기관총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중간 중간 분위기를 전환시켜 준 김구라의 토스도 좋았습니다만, 스스로 그 순간에 컨트롤 장치를 놔버리지 않고 슬픔을 웃음으로 만드는 순발력에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더군요. "눈물로 이렇게 웃겨도 되는겁니까? 정말 너무하네요!"라고 메일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예능에 나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많이 봤습니다. 그 대상이 라스라면 조금 가볍게 웃음이 섞일 수 있다는 나름의 준비도 하고 있는 게 요즘인데요. 라스에서 박철민의 자장면 이야기는 그 상상을 초월한 '눈물로 웃겨버린 웃음잔치'었습니다. 흐름상 초반이라 너무 울어버리면 다운될수도 있었던 분위기. 김구라의 센스 클린치도 칭찬하고 싶은 라스였습니다. 배고파서 자장면을 먹었지만 아직도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 무명시절의 비참함을 잊지말고 앞으로 더 많은 웃음을 주는 박철민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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